[역사속 경제리뷰] 알람브라 칙령
[역사속 경제리뷰] 알람브라 칙령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3.08.23 13: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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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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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알람브라 칙령은 1492년 3월 31일 스페인 왕국에서 조인된 칙령으로 유대인의 추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알람브라 칙령이 결국 스페인 왕국을 몰락의 길로 안내하게 했다는 평가가 있다. 물론 이후에도 스페인 왕국은 중남미로부터 많은 은이 유입되면서 부강한 나라가 됐지만 스페인 왕국이 몰락하게 된 첫 번째 단추가 알람브라 칙령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유대인을 추방함으로써 스페인의 납세 제도 자체가 붕괴됐기 때문이다.

이슬람에 지배됐던 이베리아 반도

이슬람 세력은 8세기부터 이베리아 반도 대부분을 점령했다. 로마 제국 시대부터 박해를 견디다 못해 유대인이 이베리아 반도로 넘어왔다. 그리고 이슬람 세력이 로마 카톨릭을 박해하자 유대인이 이를 방관하거나 동조를 했다. 자신이 겪은 아픔만큼 되돌려 주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이에 이슬람 군주들은 유대인의 이민과 무역활동을 장려하게 되면서 이베리아 반도에서의 이슬람 왕조 세력과 결탁하면서 무역과 금융업을 장악해 나가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슬람 세력이 점차 이베리아 반도에서 쇠퇴를 하기 시작했다. 14세기에 이르러 스페인이나 포르투칼 전체가 무어인의 영향에서 벗어나게 됐다. 그러면서 스페인 왕국은 유대인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유대인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유대인이 카톨릭으로 개종을 했다고 해도 처형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라나다 정복 이후

알람브라 칙령은 그라나다 정복이 이뤄지자 곧바로 공표됐다. 칙령에는 유대인이 신성한 카톨릭 교리를 무너뜨리고 신앙 깊은 교도들을 무너뜨리려 했다는 것이었다. 이에 4개월 만에 스페인에서 떠나줄 것을 명령했다. ‘종교적인 이유’로 유대인 추방 명령이 내려졌지만 실상 ‘돈’ 때문이라는 역사적 해석이 지배적이다. 당시 유대인이 보유한 재산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스페인 왕조로서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정복전쟁을 하면서 봉건영주와 기사들에게 전리품을 나눠줘야 할 필요성이 있었는데 유대인이 차지한 재산이 상당했다. 따라서 유대인을 추방하면서 재산을 모두 내려놓고 가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다. 실제로 칙령에는 ‘동산과 부동산을 자유롭게 처분해 국외로 밭출할 권리를 부여한다’고 기재돼 있지만 단서조항으로 ‘금과 은, 화폐의 반출을 비롯해 국가가 정하는 품목을 금지한다’고 돼있다. 즉 겉으로는 재산의 반출을 허용하는 듯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모든 재산의 반출을 금지시킨 것이다. 해당 칙령으로 인해 국외로 추방된 유대인은 13만에서 최대 80만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절반 이상은 포르투칼로 이주했다. 그리고 포르투칼 왕실에서는 유대인의 상술과 지식을 높게 샀다. 이에 포르투칼 중심으로 대항해 시대가 먼저 열리기 시작했다.

유대인 추방은 부작용으로

유대인이 추방되면서 스페인은 대혼란에 휩싸였다. 그 이유는 유대인이 그동안 의사이자 세금 징수업자였고, 납세자였으며, 은행가이고, 상인이며, 고리대금업자였다. 이슬람 왕조 밑에서는 재정 관리를 담당했다. 유대인이 없다는 것은 왕실 재정이 파탄에 이르고 스페인 귀족들 역시 파탄에 이를 수밖에 없다. 물론 스페인은 그에 대한 돌파구로 중남미에서 은광을 발견하면서 돌파구를 마련했다. 그러면서 스페인 왕국이 부강한 왕국이 되기는 했다. 그러나 잦은 전쟁 등으로 인해 오히려 쇠퇴기를 맞이해야 했고, 해상의 주도권을 영국에게 빼앗기게 됐다. 반면 스페인에서 쫓겨난 유대인은 포르투칼에서 대항해 시대를 열게 했으며, 네덜란드로 간 유대인들은 동인도회사를 설립하면서 그에 따라 네덜란드를 부강한 국가로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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