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에 지배됐던 이베리아 반도
그라나다 정복 이후
알람브라 칙령은 그라나다 정복이 이뤄지자 곧바로 공표됐다. 칙령에는 유대인이 신성한 카톨릭 교리를 무너뜨리고 신앙 깊은 교도들을 무너뜨리려 했다는 것이었다. 이에 4개월 만에 스페인에서 떠나줄 것을 명령했다. ‘종교적인 이유’로 유대인 추방 명령이 내려졌지만 실상 ‘돈’ 때문이라는 역사적 해석이 지배적이다. 당시 유대인이 보유한 재산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스페인 왕조로서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정복전쟁을 하면서 봉건영주와 기사들에게 전리품을 나눠줘야 할 필요성이 있었는데 유대인이 차지한 재산이 상당했다. 따라서 유대인을 추방하면서 재산을 모두 내려놓고 가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다. 실제로 칙령에는 ‘동산과 부동산을 자유롭게 처분해 국외로 밭출할 권리를 부여한다’고 기재돼 있지만 단서조항으로 ‘금과 은, 화폐의 반출을 비롯해 국가가 정하는 품목을 금지한다’고 돼있다. 즉 겉으로는 재산의 반출을 허용하는 듯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모든 재산의 반출을 금지시킨 것이다. 해당 칙령으로 인해 국외로 추방된 유대인은 13만에서 최대 80만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절반 이상은 포르투칼로 이주했다. 그리고 포르투칼 왕실에서는 유대인의 상술과 지식을 높게 샀다. 이에 포르투칼 중심으로 대항해 시대가 먼저 열리기 시작했다.유대인 추방은 부작용으로
유대인이 추방되면서 스페인은 대혼란에 휩싸였다. 그 이유는 유대인이 그동안 의사이자 세금 징수업자였고, 납세자였으며, 은행가이고, 상인이며, 고리대금업자였다. 이슬람 왕조 밑에서는 재정 관리를 담당했다. 유대인이 없다는 것은 왕실 재정이 파탄에 이르고 스페인 귀족들 역시 파탄에 이를 수밖에 없다. 물론 스페인은 그에 대한 돌파구로 중남미에서 은광을 발견하면서 돌파구를 마련했다. 그러면서 스페인 왕국이 부강한 왕국이 되기는 했다. 그러나 잦은 전쟁 등으로 인해 오히려 쇠퇴기를 맞이해야 했고, 해상의 주도권을 영국에게 빼앗기게 됐다. 반면 스페인에서 쫓겨난 유대인은 포르투칼에서 대항해 시대를 열게 했으며, 네덜란드로 간 유대인들은 동인도회사를 설립하면서 그에 따라 네덜란드를 부강한 국가로 만들기도 했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