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8월 24일 폼페이 최후의 날
[역사속 오늘리뷰] 8월 24일 폼페이 최후의 날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3.08.24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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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79년 8월 24일은 로마의 폼페이 최후의 날이다.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면서 결국 도시는 화산재에 덮이면서 2천여명이 사망했다. 당시 폼페이 주민이 1만 5천~2만여명 정도 된 점을 감안하면 폼페이 주민 모두가 사망한 것은 아니다. 즉, 지역 주민 10% 정도 사망했다. 당시 쓰나미도 없었고, 폭발은 15분밖에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배로 충분히 피신할 시간이 있었다. 이는 남아서 사망한 주민들은 배를 구하지 못한 하층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폼페이가 로마 시대 대표적인 휴양도시라는 점을 감안하면 남아서 사망한 주민들은 귀족들을 위해 일했던 노예 등이나 지역 토착민이 아닐까는 추정도 가능하다.

로마 건국 시기 보다 오래된 폼페이

폼페이는 로마 건국 시기보다 오래됐다. 기원전 7~8세기 그리스인들의 세력하에 있었다. 그러면서 상업도시였다. 그러다가 로마에 종속됐다. 이것이 기원전 89년에 일어난 일이다. 폼페이는 원래 계획도시이다. 이런 이유로 하늘에서 바라보면 물고기 모양이었다. 원수정 시대에 들어서면서 포도주와 기름 생산이 번창했고, 검투사 경기가 상설적으로 열리면서 번화한 도시이다. 이런 이유로 귀족들의 휴양처이기도 하다.

폼페이 최후의 날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은 계속 예견돼 왔었다. 다만 로마인들이 그것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아울러 폼페이는 베수비오 화산과 10km 떨어졌기 때문에 설마 자신의 도시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날 불의 신 불카누스를 기념하는 축제일이기 때문에 축제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화산이 폭발한 것이다. 이때 분출된 시간은 대략 15분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화산재는 하늘을 순식간에 덮고 18시간 동안 무려 수백억톤에 달하는 화산쇄설류가 도시로 쏟아졌다. 도시는 3m 가량이나 되는 화산재로 뒤덮이면서 하루아침에 폼페이는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대피할 시간은 충분

폼페이 도시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은 맞지만 주민들이 모조리 몰살된 것은 사실이 아니다. 폼페이 주민이 1만 5천~2만명 정도인데 사망자가 2천명 정도였다. 즉, 나머지 주민들은 배를 통해 피신을 했다. 그만큼 피신할 시간이 충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히려 헤르쿨라네움이 피해가 더 컸다. 그 이유는 헤르쿨라네움이 바닷가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폼페이 주민이 배를 타고 피신을 하려고 하다가 화산재에 덮이게 됐다는 것을 의밓나다. 당시 화산 폭발 시간은 짧은 반면 화산재가 하늘에 머무른 시간이 길었고, 쓰시마가 발생하지 않으면서 배를 통한 피신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따라서 폼페이에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은 배를 구하지 못한 주민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말한다.

폼페이 발굴

폼페이 발굴은 근현대 들어와서 이뤄졌다. 문제는 건물이나 도로, 물건 등이 있었는데 사람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1860년 고고학자 주세페 피오랠리가 이를 이상하게 여겨서 주오 견물마다 발견된 빈공간에 석고를 부어보기로 했다. 그러자 사람의 형상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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