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대신 필리핀 우회 공격 선택
1944년 7월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은 일본에 대한 공격을 어느 방향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를 했다. 니미츠 제독은 대만으로 직접 공략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맥아더 장군은 필리핀을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대만이냐 필리핀이냐를 두고 격론이 벌어진 이유는 인도네시아에서 일본 본토로 이어지는 자원 수송을 어떤 방식으로 끊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된다. 미국이 일본에 대해 원유와 자원 등 수출 금지 조치를 내리면서 일본이 진주만 공습을 했고, 곧바로 인도네시아 등을 점령하면서 자원 확보에 나섰다. 그리고 미국이 반격에 나서면서 이제 인도네시아에서 일본으로 이동하는 자원을 어떤 방식으로 끊어내느냐를 두고 고민했다. 이에 니미츠 제독은 대만을 곧바로 점령하면 인도네시아에서 오는 수송선단을 공격해서 효과적으로 차단할 것이라고 제안했지만 맥아더 장군은 대만을 공격하면 보급선이 길어지기 때문에 필리핀부터 시작해서 우회적으로 차단해 나가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맥아더 장군이 필리핀부터 공격하자고 주장한 것은 필리핀에서의 정치적 입지가 상당했었기 때문에 필리핀 주민을 빨리 해방시키면 맥아더 장군의 명성이 올라가고, 그로 인해 미국 대선 출마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판단했다.레이테만의 전투
결국 1944년 10월 20일 40만에 달하는 대군을 동원해서 필리핀을 대대적으로 침공햇다. 필리핀에 주둔한 일본군 40여만명 중 39만명이 전사 또는 실종, 병사 아사 등이 있었고, 미군은 육군 1만 6천명이 전사 또는 실종되었고 5만 5531명이 부상당했으며 해군 7270명이 전사 또는 부상당했다. 그럼에도 레이테만에서 승리를 하면서 상륙을 했는데 그때 사진사가 동반했는데 맥아더 장군은 자기 바지가 젖는다고 투덜댔다고 알려졌다. 또한 상륙한 사진이 알려지면서 국민의 인기를 얻으니 훗날 영화 카메라맨과 함께 다시 촬영을 했다고 전해졌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