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 독립운동 참여
부산경찰서 폭탄 투척
의열단에서 다양한 활동을 했지만 일제에 의해 발각이 되면서 좌절을 했지만 박재혁 의사는 1920년 9월 14일 고서(古書)를 파는 중국인으로 가장한 후 부산 경찰서에서 부산경찰서 서장 하시모토 슈헤이에게 폭탄을 투척했다. 하시모토는 병원으로 이송되는 도중 사망하고 박재혁 의사는 중상을 입었다. 대구형무소에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으며, 2012년 7월 14일 부산광역시 동구청에서는 그의 생가가 있는 조방로 630m 구간을 ‘박재혁거리’로 명명했다. 당시 부산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게 된 이유는 ‘진영사건(進永惨案)’ 등으로 인해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부산경찰서에 붙잡혀 고문·투옥됐기 때문이다. 당시 의열단장 김원봉은 무역상인으로 박재혁 의사에게 부산경찰서장 하시모토를 죽일 것을 지시하고 1920년 9월초 상하이를 떠나 나가사키를 거쳐 부산에 진입했다. 그리고 하시모토가 고서에 취미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고서상으로 위장했으며, 고서더미 속에 폭탄과 전단을 감췄다. 그리고 고서를 보여주는 척하면서 “나는 상해에서 온 의열단원이다”면서 죄를 열거한 후 폭탄을 서장 앞에 던졌다. 그리고 체포된 후 “왜놈의 손에서 욕보지 말고 차라리 내 손으로 죽겠다”면서 단식을 시작해 옥사해 순국했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