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쿵푸
[역사속 경제리뷰] 쿵푸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3.09.20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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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취권 1에서 악역 염철심 역을 맡은 황정리. 우리나라 사람으로 홍콩에 처음 갔을 때 쿵푸 도전자들을 상대로 모두 이겨 화제가 됐다.
영화 취권 1에서 악역 염철심 역을 맡은 황정리. 우리나라 사람으로 홍콩에 처음 갔을 때 쿵푸 도전자들을 상대로 모두 이겨 화제가 됐다.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쿵푸는 중국의 전통 무술로 우슈로 불리기도 한다. 쿵푸에 대한 오해 중 하나가 오래된 중국 전통 무술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의외로 그 역사가 짧고, 상업과 연결된 무술이 바로 쿵푸이다. 쿵푸의 창시는 명나라 말기에서 청나라 초기이다. 그리고 19세기 들어오면서 서양 문물이 들어오자 그 반대급부로 쿵푸에 대한 열기가 상당히 높아졌다.
쿵푸가 실제 전투를 통해 시행착오를 거치는 과정이 없었고, 20세기 들어서면서 소위 영화산업과 맞물리면서 동작에만 치중하고, 실제 상대를 위협하는 그런 동작을 개발하지도 못하게 됐다.

명나라 말기에서 청나라 초기

쿵푸의 기원은 명나라 말기에서 청나라 초기이다. 만주족이 중국 전역을 지배하면서 민간인의 무술연마를 금지했다. 그러자 각종 비밀결사는 몰래 무술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이것이 오늘날 문파의 기원이 됐다. 이들은 청나라의 공권력 눈을 피하기 위해 들키기 쉬운 대형 장병기보다는 맨손 박투술을 중심으로 가르치게 됐다. 이들애 전쟁이나 전투 등에 참여해서 맨손 박투술이라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계승·발전을 해야 하는데 청나라 정부의 눈을 피해서 훈련을 해야 하다 보니 실전경험이 전혀 없는 동작에만 치중하는 그런 무술이 됐다.

아편전쟁 이후 서양 문물에 반발하면서

그러다가 19세기 아편전쟁을 겪으면서 서양 무기에 대한 충격에 빠진 중국인들은 그에 대한 반발로 쿵푸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의화단’의 주축세력이 됐다. 그러나 의화단의 무장봉기는 열강의 총기 앞에서 크게 무너지면서 쿵푸의 위상도 크게 훼손되게 됐다. 아울러 국공내전과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전통 계승자들이 해외로 도피하면서 중국 대륙에서의 쿵푸 위세는 크게 쇠할 수밖에 없었다.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들은 전통무술을 봉건적이고 구태의연한 구습이라고 탄압했는데 그 이유는 ‘사제관계’ 때문이다. 이로 인해 상당수 고전 무술서적도 불태워졌고, 무술수련하는 사람들은 탄압을 받아 결국 무술을 포기하거나 해외로 도피를 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그나마 19세기 의화단 사건 등으로 인해 전통무술인 쿵푸가 어느 정도 융성했던 것이 이때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그나마 대만이나 홍콩 등에 사는 화교들에 전승되면서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됐다.

홍콩에서는 영화와 접목되면서

이런 쿵푸가 홍콩에서는 영화와 접목되면서 전세계에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무협드라마나 무협영화가 상당한 인기를 얻으면서 쿵푸에 대한 환상이 전세계 사람들에게 심어지게 됐다. 그러면서 쿵푸하는 사람들은 마치 무술의 고수인 것처럼 착각하게 됐다. 특히 이소룡과 청룽(성룡)의 활약은 쿵푸 영화의 전성기를 가져오게 됐다. 다만 영화와는 달리 쿵푸가 실전 전투 권법으로는 상당히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영화 취권 1에서 악인 악명 높은 살인 청부업자인 염철심 역을 맡은 황정리는 우리나라 배우인데 홍콩에 처음 영화 촬영하러 갔을 때 기자회견을 열고 “다 덤벼도 좋다. 단 3분 안에 끝내주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매일 도전자들이 도전을 했다. 하지만 그 도전자들을 모두 이겼고, 그리고 인해 황정리는 유명해졌고, 홍콩영화 특히 쿵푸 관련 영화에서 상당한 유명세를 떨쳤다. 그만큼 쿵푸가 실전에 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최근 격투기 선수가 쿵푸 대가를 상대로 번번이 이긴 사례를 살펴보더라도 쿵푸가 실전에 약한 무술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그것은 쿵푸가 어느 순간부터 영화나 드라마를 위한 무술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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