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까지 겸상 문화 없어
겸상은 단 둘이 마주 보고 밥을 먹는 것을 말하고, 어울려 함께 밥을 먹는 것은 ‘두레상’이라고 부른다. 다만 오늘날에는 겸상의 개념이 확장되면서 ‘두레상’도 겸상으로 취급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겸상 혹은 두레상 문화가 없다. 모두 독상을 받았다. 이는 부녀자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 밥상 문화는 ‘독상’ 문화였다. ‘겸상’은 신분질서를 어지럽히는 ‘강상죄’에 해당했다. 조선시대는 유교 문화이기 때문에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 임금과 사부와 아버지는 하나다)’를 내세웠다. 즉, 신하가 임금과 겸상을 할 수 없는 것처럼 선생님과 겸상도 할 수 없었으며, 아버지와 겸상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은 곧 하극상이기 때문이고, 대역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강상죄였다. 이는 신분 여부와는 상관 없었다. 신분이 미천해도 겸상은 할 수 없었다.일제강점기 거치면서
실제로 구한말 당시 서양선교사들이 찍은 사진 등을 살펴보면 겸상하는 장면은 없고, 독상 사진이 많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밥상 문화가 바뀌게 됐다. 그것은 일제강점기 당시 수탈을 하기 위해서라는 이야기가 있다. 일본이 워낙 수탈을 하면서 독상을 차릴 수 있는 충분한 식량 공급이 되지 못하면서 결국 겸상 문화가 자리매김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6.25 전쟁을 거치면서 피난살이를 해야 했던 피난민들에게는 독상을 차린다는 것은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런 이유로 점차 독상 문화가 사라지면서 이에 겸상 문화가 자리매김을 하게 됐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