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구텐베르크 인쇄술 발명
[역사속 경제리뷰] 구텐베르크 인쇄술 발명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3.09.21 13: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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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전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는 1377년(우왕 3) 7월 청주목의 교외에 있던 흥덕사(興德寺)에서 금속활자인 주자로 찍어낸 ‘직지심체요절’이다. 하지만 전세계에 인쇄술을 보급하게 만든 사람은 ‘구텐베르크’이다. 직지심체요절은 구텐베르크 인쇄술보다 78년 앞서 제작한 것은 맞지만 구텐베르크 금속활자의 의의는 인류의 지식에 대한 접근성을 크게 향상시켜줬다는 점이다. 덕분에 초고가 사치품인 책이 대중화가 된 것이다. 또한 교황청의 ‘면죄부’가 대량 생산이 가능하게 만들었고, 이로 인해 종교개혁이 촉발되기도 했다.

고려보다 뒤쳐졌지만

우리나라 즉 고려가 금속활자를 세계 최초로 발명한 것은 맞지만 문제는 보급이었다. 그 한계를 뛰어넘게 만든 것이 바로 구텐베르크의 인쇄기이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는 잉크가 번지지 않으면서 빠른 속도로 인쇄가 가능하게 했다. 그것은 혁명과 같은 것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목판 인쇄가 가능했지만 잉크가 번지기 일쑤였고, 속도도 빠르지 않았기 때문에 주로 필사를 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책은 ‘초고가 사치품’으로 귀족들의 사치품이었다. 그런데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발명하면서 책이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그에 따라 책의 가격이 낮춰지기도 했다.

인쇄기의 보급은 ‘면죄부’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통해 처음 인쇄한 것이 ‘성경’이지만 인쇄기가 보급될 수 있었던 것은 ‘면죄부’이다. 구텐베르크는 1448년 마인츠에 인쇄소를 개업했다. 주요 내용은 카톨릭 교회의 면죄부를 찍어 팔았던 것이다. 카톨릭교회 입장에서 같은 내용을 필사해서 계속 나눠주는 것보다는 구텐베르크 인쇄기를 통해 대량으로 찍어내서 면죄부 대상의 이름을 기재하고, 카톨릭교회 인장을 찍는 것이 오히려 비용면에서 효율적이었다. 이런 이유로 구텐베르크 인쇄소는 면죄부를 찍어냈고, 그로 인한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독일 전역으로 인쇄소가 퍼지게 된 계기가 됐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면죄부 논란이 결국 마르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이 나오게 됐고, 구텐베르크 인쇄소를 통해 독일 전역으로 인쇄돼 전파됐다.

상공업의 발달, 인쇄술의 발달로

게다가 당시 유럽은 중세를 거쳐 근세로 접어드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상공업이 발달했다. 그러다보니 거래정보 및 시세 같은 정보를 빨리 대량으로 주고받아야 하는 상공업에서 적용돼 인쇄술이 전파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게다가 대학을 중심으로 학생들에게 구텐베르크 인쇄술은 천국을 만난 것이었다.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 학생들은 대학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 후 무조건 외워서 다음 강의에 들어가서 교수의 강의를 듣고 이해하는 방식이었다면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책을 강의에 가져가서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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