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윤복 선수는
서윤복 선수는 1947년 제51회 보스턴 마라톤에 출전, 2시간 25분 39초의 세계신기록을 세우면서 우승했다. 당시 세계신기록은 1936 베를린 올림픽 당시 손기정 선수가 세운 기록이었다. 이것을 서윤복 선수가 깬 것이다. 당시 감독은 손기정 선수, 코치는 남승룡 선수였다. 광복 이후 국제대회에서 Korea라는 이름으로 태극기를 달고 출전, 수상한 첫 우승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스포츠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이런 이유로 귀국 후 여운형을 만났고, 김구를 만났는데 김구는 ‘족패천하(足覇江湖, 발로 천하를 제패하다)’라는 붓글씨를 선물로 받았다. 당시 미군정이었기 때문에 주한미군으로부터 보스턴 마라톤 대회 정보를 듣고 출전을 경정한 후 모금을 통해 여비를 마련하고, 미군 군용기를 얻어 타고 갔다. 불과 대회 개막 일주일 전에 대회 장소에 도착했기 때문에 풀코스 완주를 두 번 밖에 경험하지 못했다. 보스턴 마라톤 이후 은퇴를 하고, 후학을 양성하다가 2017년 6월 27일 별세했다. 현재 국립서울현충원 제3유공자 묘역에 안장됐다. 이는 손기정 선수에 이어 두 번째이다.손기정 선수는
손기정 선수는 일제강점기 당시 담임교사였던 이일성 교사가 손기정 선수의 재능을 알아보고 육산 선구가 될 것을 권유했다. 그리고 가난 때문에 결국 육상을 포기하게 됐지만 회사의 점원으로 취직하면서 학업과 육상을 병행할 수 있었다. 1932년 경성부에서 열린 제2회 동아마라톤에 출전했지만 서울 지리를 몰랐기 때문에 길을 잃었고 2위를 했다. 하지만 마라토너를 배출하는 양정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1935년 도쿄 메이지 신궁대회에서 마라톤 풀코스를 출전, 2시간 26분 42초이라는 비공인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한다. 이후 1936년 베를린 올림팍 마라톤 경기에 남승룡 선수와 함게 선발전에 참가했다. 일본 육상계에서는 일본인을 뽑고 싶어하면서 꼼수까지 부렸지만 결국 손기정 선수와 남승룡 선수는 실력으로 출전을 하게 됐다. 그리고 베릴린 올림픽에서 2시간 29분 19초라는 올림픽 신기록을 기록하면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당시 기록은 1947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서윤복 선수가 깨기 전까지는 계속 유지됐다. 금메달을 땄지만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있어야 했기 때문에 손기정 선수는 올리브 묘목으로 일장기를 가렸다. 또한 일장기 말소 사건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리고 아돌프 히틀러를 만났는데 손기정 선수는 히틀러를 공식적으로 만난 우리나라 사람 중 유일한 사람이다.남승룡 선수는
남승룡 선수는 1932년 전일본선수권과 1933년 극동선수권에서 잇달아 우승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리고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손기정 선수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우여곡절 끝에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했고, 남승룡 선수는 2시간 31분 42초의 기록으로 동메달을 땄다. 당시 남승룡 선수는 막판 스퍼트로 30명의 선수들을 앞질렀던 결과이다. 그리고 3위로 들어온 후에도 기운이 남아서 제자리 뛰기를 하면서 손기정 선수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당시 금메달을 딴 사람에게는 올리브 묘목을 줬지만 동메달을 딴 사람에게는 올리브 묘목을 줬다. 이에 남승룡 선수는 훗날 손기정 선수가 부러웠던 것은 금메달을 따서가 아니라 가슴에 있는 일장기를 가릴 수 있는 올리브 묘목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