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잡채는 각종 야채를 기름으로 볶은 후 삶은 당면을 간장양념으로 같이 볶는 요리이다. 대한민국 대표 국민 요리이면서 잔칫상에 빠지지 않고 특히 명절에 빠지지 않은 음식이다.
‘잡채’는 말 그대로 ‘채소’를 섞은 요리이지만 ‘당면’이 주가 되고 있다. 하지만 원래 잡채는 채소만 볶은 요리를 지칭했다.
궁중요리에서 출발
잡채는 조선에서 궁중요리였다. 조선시대에는 수랏상에 오르는 요리가 바로 잡채였다. 이는 팔도의 다양한 식재료를 고루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 팔도에서 올라온 다양한 나물, 채소, 고기 등을 각가 따로 손질해 준비해서 각각 볶아서 만든 것이 바로 잡채였다. 그리고 당면 대신 꿩고기를 가늘게 찢어서 고명으로 올려놓았다.
잡채를 좋아한 왕은 광해군이다. 광해군 시절 문신 이충은 잡채 요리를 잘해서 광해군의 총애를 얻어 호조판서 자리에 올랐고, 죽은 후에는 우의정으로 추중됐다. 이런 이유로 이충을 ‘잡채판서’ 혹은 ‘잡채상서’라고 불렀다.
조선시대 왕들이 잡채를 먹는 이유 중 하나가 팔도에서 올라오는 진상품으로 만들기 때문에 팔도의 작황 상태 등을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잡채의 상태 등을 보고 방납의 폐단을 개혁했다는 것은 과도한 추측에 불과하지만 최소한 어느 지역 백성의 사정이 어느 정도인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잡채를 맛본 임금이 어느 지역의 작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면 그 지역의 특산물은 진상하지 말라고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당면 개발되면서
오늘날 잡채의 형태를 띄게 된 것은 1919년 황해도 사리원에 당면 공장이 세워지면서이다. 그러면서 잡채에 당면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오늘날과 같은 잡채의 형태가 만들어졌다.
잡채는 한국인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음식 중 하나가 됐다. 파독 광부 간호사들은 독일인을 대접할 때 잡채를 대접했다.
그만큼 잡채가 한국인들에게 사랑받는 음식이 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됐다. 그리고 거꾸로 잡채는 중화요리집에 도입되면서 잡채밥의 형태로 탄생하게 됐다.
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