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조 사건 계기로
주민등록제도는 1947년 인구 파악을 위해 도입을 하려고 했지만 흐지부지 됐다. 6.25 전쟁 직후부터 시민증 혹은 도민증을 발급했다. 다만 각 지자체별로 다른 신분증이었기 때문에 혼란이 있었다. 박정희 정부가 출범한 후 국민 통제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주민등록증을 도입하려고 했다. 이런 가운데 1968년 1월 21일 이른바 김신조 사태가 발생하면서 주민등록증 발급의 필요성이 확실하게 제기됐다. 김신조 일당이 북에서 내려와 인왕산까지 활개를 치고 돌아다닌 사실에 국민들도 경악하면서 간첩을 식별할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주민등록증 발급의 필요성에 제기됐다. 이에 그 해 11월 21일 박정희 대통령이 100001로, 육영수는 200002로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앗다.간첩 식별 위해
주민등록증이 최초 발급 받을 당시만 해도 주민등록증은 간첩 식별의 상징이었다. 주민등록증을 소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경찰에 끌려가기도 했다. 그만큼 주민등록증은 신분 확인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주민등록증은 신분 확인의 상징에서 복지의 상징으로 바뀌게 됐다. 특히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주민등록 제도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그것은 확진자의 동선을 추적하는데 도움이 됐다. 재난지원금 지급 등 긴급을 요하는 전국민적 업무에서 대단히 유용하게 사용됐다. 관공서에서 주민등록번호로 알 수 있는 정보가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금융거래 혹은 행정처리에 있어 주민등록제도는 상당한 편리함을 안겨줬다. 주민등록제도는 동명이인 등으로 사람을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주민등록제도는 복지국가에서 유용한 제도라는 평가가 있다. 즉, 과거에는 국민 통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국민에게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가장 유용한 수단이 바로 주민등록제도이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