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11월 28일 테헤란 회담 개최
[역사속 오늘리뷰] 11월 28일 테헤란 회담 개최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3.11.28 0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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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테헤란 회담에 참석한 스탈린, 루스벨트, 처칠(왼쪽부터)./사진=연합뉴스
1943년 테헤란 회담에 참석한 스탈린, 루스벨트, 처칠(왼쪽부터)./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43년 11월 28일은 미국 플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 영국 윈스턴 처칠 수상, 소련 이오시프 스탈린 공산당 서기장 등이 이란 제국 수도 테헤란에 모여 회담을 가진 날이다. 12월 1일까지 회담을 가졌다. 우리나라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회담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중대한 변곡점이 된 회담이라는 것이 세계사의 평가이다. 테헤란 회담은 미국과 영국이 소련과 손을 잡고 독일에 대항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고, 그 결과가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다.

소련과의 연합전선 구축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이후 유럽은 빠른 속도로 독일의 손아귀에 넘어갔다. 하지만 유일하게 넘어가지 않은 나라가 바로 소련이었다. 이런 이유로 소련이 독일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테레한 회담을 하면서 서구 유럽이 소련과 손을 잡고 독일에 대항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이를 위해 스탈린은 북프랑스 상륙작전을 제안했고, 처칠은 지중해 연안 상륙작전을 제안했다. 논의 끝에 스탈린이 주장한 북프랑스 상륙작전을 감행하기로 결정하면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이뤄졌다. 아울러 이란의 독립과 주권·영토 보전을 약속했다.

소련과 손 잡지 않았던 서구유럽

서구유럽은 소련과 어떤 군사적 제휴를 맺지 않았다. 하지만 1941년 진주만 공습을 계기로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을 하게 됐다. 다만 미국의 입장에서 태평양 전쟁과 유럽 전선 모두를 수행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런 이유로 미국은 소련과 손을 잡고 독일에 대항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위해 테레한 회담이 열리게 됐다. 다만 스탈린이나 루스벨트 모두 장거리 비행을 꺼렸기 때문에 결국 중동지역인 테헤란에서 회담을 갖게 된 것이다. 서구유럽이 소련과 군사적 협력관계를 맺고 독일을 몰아내겠다는 작전을 세웠다. 그러면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벌어졌고, 독일이 서부전선에 신경을 쓰는 사이 소련은 동부전선에서 밀고 들어가 결국 베를린을 함락했다. 실제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위해 소련이 동부전선에서 대규모 공세를 펼쳤는데 바그라티온 작전이었다. 독일은 테헤란에 연합국 정상들이 모여든 것을 알자 암살하려고 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수립단계에서 취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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