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권 떠받치던 3개의 권력기관
빠른 속도로 권력 접수 해나간 전두환
그것을 전두환은 빠른 속도로 접수해나갔다. 10.26 사건이 발생하고, 곧바로 계엄령이 선포되면서 사실상 권력은 계엄사령부에 집중됐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전두환은 합동수사본부장이 됐다. 즉, 10.26 사건을 수사하는 주체가 전두환이 된 것이다. 전두환은 합동수사본부장을 앞세워 빠른 속도로 경호실과 중정을 접수해갔다. 즉, 명목상 보안사령관이면서 합수부 본부장이었지만 실질적으로 중정과 경호실까지 장악한 것이다. 박정희 정권을 유지하는 3개의 기둥 모두를 장악한 것이다. 정승화 계엄사령관 입장에서 전두환이 3개의 권력기관을 모두 장악한 것을 두고 볼 수 없는 입장이 되면서 그에 따라 전두환을 제거할 필요를 느끼게 됐다. 정승화 계엄사령관은 전두환의 쿠데타 기미를 감지했는지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전두환을 계속 보안사령관에 앉힐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1979년 12월 9일 정승화 계엄사령관은 노재현 국방부 장관과 골프를 치면서 전두환을 동해안경비사령관으로 좌천시키는 보직 전출해야 한다는 건의를 했다. 이것을 김용휴 국방부 차관이 전두환에 제보를 했고, 이에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났다.진압군이 막지 못한 이유
진압군이 막지 못한 이유는 ‘하나회’라는 사조직도 있었을 뿐만 아니라 ‘통신감청’을 했다는 점이다. 보안사는 군부대를 사찰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시 군부대 통신감청을 했다. 실제로 이건영 3군사령관이 진압을 위해 여러 부대에 전화를 한 녹음본이 1995년 세상에 공개됐다. 그것은 보안사가 전화감청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보안사가 어떤 부대가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 간파했다는 것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사조직인 하나회를 움직인 것이다. 반면 진압군은 아무런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우왕좌왕하면서 결국 반란군에 모든 실권을 넘겨줘야 했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