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위섬멸작전에 빠진 이유
당시 유엔군은 우수한 화력을 갖고 있었다. 중공군은 1개 포병대만 있었을 뿐 중화기도 없었고, 오로지 소총과 박격포 등이 있었다. 반면 미군은 중화기와 항공지원이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유엔군이 승리를 할 것이라고 점칠 수 있었다. 하지만 중공군은 산악지형을 통한 기습적 우회, 포위공격을 했다. 반면 미군은 산악지형에서의 전투 경험이 부족했다. 더욱이 보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했다는 점도 유엔군이 패착이었다. 미 해병대 전투기록에는 철도가 많이 언급됐다. 그만큼 철도의 부존재가 미국으로서는 뼈 아픈 대목이었던 것이다. 함흥에서 진흥리로 이르는 주 보급로는 너무 좁고 험난했다. 이에 10군단 73공병대대와 185공병대대가 투입되어 일방통행을 양방통행으로 넓혔고 북한군이 후퇴하며 교량과 도로를 폭파한 상태라 교량 20개와 우회로를 새로 설치해야만 했다.미군의 가장 큰 적은 중공군이 아니라 추위
무엇보다 미군의 가장 큰 적은 중공군이 아니라 추위였다. 미국으로서는 가장 추운 전투로 기록돼 있다. 그것은 시베리아의 매서운 추위보다 더한 추위였다는 것이다. 미군이 한국전쟁에 참전을 했을 당시에는 여름이었다. 한 미군의 기록에 의하면 ‘이같은 무더위는 자신이 처음 겪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불과 몇 개월도 안돼서 매서운 추위를 경험해야 했다. 개마고원 등지에서의 추위는 그야말로 시베리아보다 더 혹독한 추위이다. 그 추위를 경험 못한 미군으로서는 추위에 당황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일각에서는 장진호 전투를 최소 3~4월에 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