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바구니 매달아
처음에는 평범한 복숭아 바구니를 매달아 공을 던져 넣는 경기로 만들었다. 그러던 도중 낡은 바구니에 공을 던졌더니 바구니 밑이 뚫리게 되면서 경기가 끊기지 않게 됐다. 그러면서 지금의 농구 골대가 만들어졌다. 시범경기를 본 체육학교 고위간부들은 매우 높게 평가를 했고, 네이스미스볼로 스포츠 이름을 지으려고 했지만 네이스미스가 거절하면서 ‘바스켓볼’이라고 했다. 농구는 바스켓볼을 직역한 말이다. 농구 발전에 기여를 했던 사람들은 미국 내 유대인이었다. 유대인은 밖으로 활동하는 운동을 꺼려하기 때문에 실내운동이 필요했다. 따라서 유대인 사회에서 유행을 했다. 당시 주류사회는 미식축구를 좋아했고, 다른 이민자들은 아이스하키나 야구를 좋아했다. 이런 이유로 초창기에는 유대인이나 하는 스포츠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점차 다른 사람들도 농구를 좋아하게 됐다. 특히 대학가를 중심으로 아마추어 농구단이 생겨났다. 유대인이 워낙 좋아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유대인의 자본도 많이 들어간다. 특히 후원사 중에는 유대인 자본이 들어간 회사들이 많이 있다.오늘날 규칙은
오늘날의 규칙은 1932년 국제농구연맹이 결성되면서이다. 1936년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대회에서 처음으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1976년 제21회 몬트리올 올림픽에서는 여자 종목이 채택됐다. 또한 1992년 제25회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회 때부터는 프로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을 허용하게 되면서 상당한 사랑을 받게 됐다. 여자 농구의 경우에는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온 이민자이며, 매사추세츠의 스미스 여자대학교에서 체육교사로 일하던 센다 베런슨이 네이스미스가 농구를 만든 다음해인 1892년 농구 규칙을 조금 더 부드럽게 수정하여 여학생들에게 전파했고 크게 인기를 끌면서 여자 농구도 대중적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농구의 발명자인 제임스 네이스미스는 1959년, 여자 농구를 전파한 센다 베런슨은 1985년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됐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