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12월 22일 수출 100억불 달성
[역사속 오늘리뷰] 12월 22일 수출 100억불 달성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3.12.22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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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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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77년 12월 22일은 우리나라가 수출 100억불 달성한 날이다. 이날 오후 4시 수출 100억불을 돌파한 것이다. 전세계 최빈국에서 중진국 반열에 오른 것이다. 미국의 원조로 먹고 사는 나라가 이제 당당한 중진국 반열에 오른 것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오늘날 세계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서게 됐다.

1981년 목표로 삼았지만

1972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연평균 25%의 수출증가를 보인다면 1981년에는 100억달러를 달성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1인당 국민소득 역시 1천달러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100억 달러 수출을 달성하기 위해 중화학공업을 육성하기로 결정했다. 그 이전까지는 주로 소비재 위주의 공업을 생각했지만 이때부터 중화학공업으로 전환했다. 이는 일본이 100억 달러를 달성했던 경험을 차용한 것이다. 아울러 베트남 전쟁이 끝나가는 무렵이기 때문에 더 이상 노동집약적인 소비재 산업으로 성장을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왜냐하면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나면 동남아 국가들은 정치적으로 안정이 되고, 그로 인해 노동집약 산업은 동남아로 옮겨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노동임금의 상승이 급격히 상승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저임금 노동력 투입 산언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다.

연두기자회견에서

이에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1973년 1월 12일 대통령 연두기자회견 중화학공업화선언에서 중화학공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중화학공업ㅇ르 획기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계획이 추진됐다. 장기 중화학공업 육성계획에서 앞으로 한국의 공업화 내지 경제발전을 주도할 업종의 선정은 전후방 산업연관효과가 크고 산업전반에 걸쳐 성장기여도가 높으며 기술집약적인 산업으로서 국제수준에 이를 잠재력을 가진 것에 우선순위를 뒀다. 이에 철강, 화학, 비철금속, 기계, 조선, 전자 등 6개 업종이 주도 업종으로 선정됐다. 그리고 이후 실질수출증가율은 1973년 55.8%, 1974년 9.5%, 1975년 23.2%, 1976년 35.4%, 1977년 19.3%로 석유위기 때를 제외하고 고도의 수출성장률을 계속 이루었다.

1차 석유 파동으로

하지만 중화학공업 육성이 난관에 부딪혔는데 그것은 바로 제1차 석유파동이었다. 그로 인해 1975년에는 수출 미달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에 박정희 정부는 두 가지를 선택했다. 하나는 중동건설이었고, 하나는 종합무역상사였다. 중동건설 최전방에는 현대건설과 정주영 회장이 있었고, 이에 1976년 정주영 회장은 10억 달러 규모의 주바일 항만 공사를 따내고, 이를 성공시키기 위해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했다. 또한 종합무역상사는 “라면에서부터 미사일까지 판매한다”는 정신으로 수출전선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로 인한 부작용도 발생했다. 바로 대기업 위주의 경제 구조로 바뀌게 됐다는 것이다. 수출 100억달러를 달성했지만 그 결실은 대기업에 치중됐을 뿐 국민 전체가 골고루 나눠가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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