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목표로 삼았지만
연두기자회견에서
이에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1973년 1월 12일 대통령 연두기자회견 중화학공업화선언에서 중화학공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중화학공업ㅇ르 획기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계획이 추진됐다. 장기 중화학공업 육성계획에서 앞으로 한국의 공업화 내지 경제발전을 주도할 업종의 선정은 전후방 산업연관효과가 크고 산업전반에 걸쳐 성장기여도가 높으며 기술집약적인 산업으로서 국제수준에 이를 잠재력을 가진 것에 우선순위를 뒀다. 이에 철강, 화학, 비철금속, 기계, 조선, 전자 등 6개 업종이 주도 업종으로 선정됐다. 그리고 이후 실질수출증가율은 1973년 55.8%, 1974년 9.5%, 1975년 23.2%, 1976년 35.4%, 1977년 19.3%로 석유위기 때를 제외하고 고도의 수출성장률을 계속 이루었다.1차 석유 파동으로
하지만 중화학공업 육성이 난관에 부딪혔는데 그것은 바로 제1차 석유파동이었다. 그로 인해 1975년에는 수출 미달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에 박정희 정부는 두 가지를 선택했다. 하나는 중동건설이었고, 하나는 종합무역상사였다. 중동건설 최전방에는 현대건설과 정주영 회장이 있었고, 이에 1976년 정주영 회장은 10억 달러 규모의 주바일 항만 공사를 따내고, 이를 성공시키기 위해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했다. 또한 종합무역상사는 “라면에서부터 미사일까지 판매한다”는 정신으로 수출전선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로 인한 부작용도 발생했다. 바로 대기업 위주의 경제 구조로 바뀌게 됐다는 것이다. 수출 100억달러를 달성했지만 그 결실은 대기업에 치중됐을 뿐 국민 전체가 골고루 나눠가지지 못했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