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로 제주 한 바퀴 도는 데 2~3 시간이라고? NO, 정답은 6~7 시간
- 제주 패키지가 재미 없는 이유, 창 너머로 경치 보기 때문
- 머무는 여행이 재미 있는 제주, 기억이 오래 남는 여행
[파이낸셜리뷰=김민수 여행작가] 제주도는 정말 큰 섬이다. 도민의 신분으로 살다 보니 물리적 크기 이상을 늘 실감하고 있다. 집이 있는 성읍은 동쪽의 마을이다. 표선면에 속하며 생활의 영역은 기껏해야 성산읍 정도로 확대된다. 반면 서쪽의 안덕, 대정 그리고 한경면은 아득하리만큼 멀리 있다.
일을 보러 다녀오면 하루가 다 가버릴 것만 같은 곳이다. 그 때문에 간혹 당근에 마음에 쏙 드는 물건이 올라오더라도 거래 장소가 그쪽이면 일단 포기하게 된다. 심지어는 북쪽의 애월이나 한림에 사는 지인들조차도 얼굴을 본 지가 백만 년은 된 듯하다.
한 바퀴 돌기 없기, 실제 소요 시간 6~7시간
옆 나라 일본에는 우리나라의 두 배나 되는 6,800개의 섬이 있다. 그중에 혼슈, 규슈, 훗카이도, 시코쿠로 이뤄진 본토를 제외하고 가장 큰 섬은 오키나와다. 그런 오키나와도 제주도 면적에 비하면 65%에 불과하다. 제주도의 둘레는 192km, 해안도로의 총연장 길이는 220km, 일주도로는 176km 다. 양양 고속도로나 경부고속도로 서울에서 대전까지의 구간보다도 길다.
한림읍 비양도의 바닷가에는 ‘애기업은 돌’이라 불리는 호니토(용암 내의 가스 분출로 생긴 소규모 화산체)가 서 있다. 이 돌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구좌읍 김녕리에 사는 해녀들이 물질을 위해 비양도까지 들어왔다. 작업을 마친 후, 모두 돌아갔으나 우연히 아기를 업은 한 해녀만 섬에 남게 되었고, 그녀는 남편이 자신을 데리러 와주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다 망부석이 되었다.’
여기서 김녕리는 동쪽, 비양도는 북쪽에 있다. 구슬픈 전설이지만, 원정 물질을 와서 쉽게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을 만큼 제주도는 크다. 그런데도 많은 여행객이 제주공항에 도착하고 렌트카를 빌린 후, 한 바퀴를 도는 무모함을 감행한다. 귀한 여행의 하루 치를 차 안에서 소모해야 하는 억울함이 있을 텐데도 말이다.
제주도에는 자동차 전용도로가 없다. 대부분 도로는 제한속도 40~70km 수준이다. 게다가 주행 중 곳곳에서 구간단속 구간과 정지신호를 만나게 된다. 그런 이유에서 제주도를 한 바퀴 도는데 2~3시간이면 충분하다는 항간의 정보는 근거가 없다. 중간에 내려 식사도 하고 남들 다 가는 해안가 스폿에서 사진 몇 장까지 찍어 담는다면 6~ 7시간은 족히 걸린다.
오로지 sns 피드를 위한 보여주기 여행이라면 몰라도 추억도 남기고 섬의 진면목을 조금이라도 느껴가고 싶다면 ‘제주도 한 바퀴’는 정말 노굿이다.
왔다리 갔다리도 피곤해요
제주도는 크게 제주시와 서귀포시로 나뉜다. 여기서 읍, 면, 그리고 제주 시내와 서귀포 시내를 별도의 영역으로 하면 총 10개 구역이 된다. 그리고 해안, 중산간, 시내에 길고 짧은 29개의 도로가 거미줄처럼 놓여있다. 어떤 도로를 이용하든 다음 구역으로 이동하는데는 대략 20분이 걸린다. 섬은 남북으로 짧고 동서로 길지만, 중앙에 한라산이 솟아있으므로 큰 차이가 없다. 길은 짧은 만큼 가파르기 때문이다. 이 점을 유념하면 여행의 동선은 단순하고 쉬워진다.
제주공항을 출발하여 성산 일출봉까지 이동한다고 가정할 때, 제주 시내– 조천읍- 구좌읍- 성산읍의 과정이 된다. 그러면 60분이라는 계산이 나오는데 얼추 실제 걸리는 시간과 비슷하다. 표선에서 대정까지는 ‘표선 – 남원 – 서귀포시 – 안덕 – 대정’ 순이다. 1시간 20분이나 걸린다. 만약에 일출봉 부근에 숙소를 잡고 안덕에 있는 산방산탄산온천을 다녀온다고 했을 때 거의 한나절이 소요된다. 식사 시간을 포함하면 하루 일정은 그것으로 끝이다. ‘왔다리 갔다리’도 효율적인 여행방법이 아니다.
동선이 줄어드는 순간, 여행이 재미 있다
우리가 패키지여행을 재미없어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너무 많은 스폿을 일정에 넣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시간을 창 너머 스치는 경치를 바라보고 숙소에서 잠을 자는 데 허비하게 된다. 잠시 내린 그곳을 휴대폰 갤러리에 담을 수는 있지만, 추억 만들기는 벅차다.
몇 년 전 여행을 위해 제주에 왔던 적이 있다. 제주시 교래자연휴양림, 금능해변을 베이스로 3박 4일을 여행했다. 야영장과 호텔에 번갈아 묵으며 사려니, 곶자왈, 제주 구도심을 걸었다. 동문시장과 민속 오일장을 샅샅이 뒤지며 먹거리에 취하고 수채화 붓을 금방이라도 씻어 낸 듯한 금능, 협재 바다를 바라보며 온종일 멍하니 보내기도 했다.
대정에 머물렀던 또 다른 여행에서는 가파도와 마라도 그리고 제주올레 10코스를 걸었다. 60년 노포에 빠져 하루에 한 번씩 찾아갔고 전분공장을 리모델링한 카페에서 커피와 고구마 라떼를 마셨다. 여전히 설레고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들, 돌이켜보니 움직이는 여행보다는 머무는 여행이 훨씬 기억에 남았다.
도민이 된 지 2년이나 되었는데 동쪽 지역조차 제대로 섭렵하지 못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제주도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여행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표선목욕탕 언니들의 단골 식당에는 관광객이 없다. 입도 10년 차 이주민들의 즐겨가는 피서지도 이름 없는 해변이다. 동백마을 신흥2리가 유엔 세계관광기구(UNWTO)가 선정한 세계 최고 마을로 등극하고 오조리 갯벌이 우리나라의 17번째 습지보호 지역으로 지정되었다는 사실조차 아는 이가 많지 않다.
여행을 그곳을 보는 일이다. 그곳을 보려면 당연히 머물러야 하며 머물게 되면 훨씬 많은 것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