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울 수산시장 매대의 주인공은, 옥돔
- 여전히 북적이는 국수, 칼국수, 해장국 등 노포 맛집
[파이낸셜리뷰=김민수 여행작가] 제주 시내 나들이는 경기도민이었던 내가 강남이나 을지로로 나서는 일과 같다. 가까운 듯 멀고 아는 듯 모른다. 서울이 그랬던 만큼 제주 시내도 변화하고 팽창했다. 그래서인지 신제주는 어디가 어딘지 당최 헷갈린다. 시내를 달리다 보면 20분 전 스쳤던 건물이 반대 방향에서 다가오기도 한다.
도민의 삶에 최적화되었다는 제스코마트, 회원 가입을 해놓은 와인창고, 그리고 아내가 다니는 치과는 모두 제주 시내에 있다. 집에서 시내까지는 차로 50분, 크게 부담되는 거리는 아니지만, 한 번 나가면 저녁이 되어야 들어오게 된다. 마치 신제주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어야 할 것처럼 원도심으로 건너가기 때문이다. 외딴 섬처럼 오랜 제주의 정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원도심, 아내와 내겐 그래서 더욱 특별한 곳이다.
1980년대 이후 지금의 연동, 노형동을 앞세운 신제주가 생겨나기까지 제주시의 중심은 관덕정, 칠성로, 탑동, 산지천, 동문시장 일대였다. 현재는 원도심 혹은 구도심으로 불리는 이곳, 그 시절의 추억과 아련한 고집을 돌아보며 제주다움에 취해보곤 한다.
동문시장의 겨울
동문시장은 제주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상설시장으로 1945년 해방이 되면서 생겨난 제주동문상설시장이 그 시초다. 그리고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65년 ‘주식회사 동문시장’ 건물이 준공됨과 때를 같이 한다. 동문시장은 주식회사 동문시장, 동문재래시장, 수산시장, 골목시장, 공설시장, 야시장, 새벽시장 등 총 7개의 시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12개 게이트를 통해 출입할 수 있다.
동문시장이 원도심에 형성된 까닭은 첫째 제주항 인근이며, 과거 동일주도로와 서일주도로의 종착 터미널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사나 잔치 때 쓸 가장 신선한 생선을 사기 위해 성산이나 한림에서 버스를 타고 찾아온 곳이 바로 동문시장이다.
한겨울 수산시장 매대의 주인공은 옥돔이다. 분홍빛 당일바리(당일 조업해서 잡아 올린 생선)의 미끈한 자태에서는 광채 마저 흐른다. 물론 생물 옥돔의 주 고객은 십중팔구 도민이다. 제주에서는 옥돔을 그냥 생선이라 부른다. 중간 크기라도 마리당 3~4만 원이나 하지만 잘 말렸다가 제숙으로 쓰기 위해 지갑을 연다.
그러고 보니 12,000원짜리 옥돔 백반이 수상하다. 식당에서 백반으로 상에 오르는 옥돔의 정체는 대부분 옥두어라 불리는 유사 어종이다. 맛과 모양이 흡사하지만, 옥돔에 비해 색이 비교적 희고 꼬리지느러미에 노란 줄무늬가 없다.
새벽에 잡아 왔다는 엄청난 크기의 은갈치와 일미 8만 원의 자연산 전복에 입맛을 다시다 떡집 앞에 섰다. 밀가루로 만든 상외떡, 동그란 제주 송편, 기름떡 등과 더불어 조리된 나물과 잡곡밥, 고기 산적 등 제사음식은 생선류만 빼고 다 있다.
제과점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단팥빵과 큼직한 카스테라도 눈에 띈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일제강점기에 생겨난 풍습이다. 나가사키나 시모노세키를 왕래하던 제주민들이 들여와 제사상에 올리고 나눠 먹은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관광객의 틈을 비집고
동문시장의 주 고객은 관광객들이지만, 그 틈새마다 아랑곳없이 이어져 온 제주의 모습이 있다. ㈜동문시장 포목점 골목 안에 있는 국수집 동진식당과 금복식당은 각각 업력 58, 56년의 노포다. 시장을 보고난 아주머니 할머니가 버스 시간을 기다리며 한 그릇 배불리 채우던 그런 곳이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양 만큼은 푸짐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노포는 골목시장 안에도 있다. 메밀꿩칼국수를 주메뉴로 하는 이곳의 이름 또한 골목식당이다. 한 그릇 가득 담겨 나온 칼국수는 순도 100%의 메밀이다. 수저로 떠먹어도 될 만큼 뚝뚝 끊어진다. 게다가 꿩 살코기의 단백한 식감이 더해지니 그야말로 ‘베지근’ 할 수밖에 없는 맛이다.
바야흐로 방어철이다. 2~3kg 나가는 중방어라면 몰라도 대방어는 제주라고 결코 저렴하지 않다. 서귀포 등지의 시장이나 수산 마트에서 권하는 먹이방어는 맛은 있지만, 일본산 양식이라 찝찝하다.
그렇다고 매번 횟집에서 먹을 형편도 아니다. 겨울이 다가오자 대방어를 공급받을 별도의 루트가 절실해졌다. 그래서 수소문 끝에 알아낸 곳이 동문 수산시장 내 자갈치상회(자갈치활어직매장)다. 대방어 뱃살이 1kg에 25,000원, 포장 후 집으로 가져가서 먹어야 하지만, 이만하면 대만족일 수밖에.
◎ 골목식당 : 제주시 중앙로 63-9
◎ 동진식당 : 제주 제주시 동문로 16
◎ 금복식당 : 제주시 동문로 16
◎ 자갈치상회 : 제주시 이도1동 1349-22
모든 노포가 꼭 영원해야 할까?
한때 제주 3대 해장국은 은희네, 미풍, 모이세로 통했다. 섬사람들의 쓰린 속을 달래던 이들 식당의 유명세는 관광객들에게까지 번져나가 체인점을 낼 만큼 대박의 시기를 보냈다. 현재 제주는 해장국의 춘추전국시대다. 소위 요즘 맛있다는 해장국의 순위에서 옛 이름들이 사라진 지 오래다. 맛도 변하고 취향도 다양해진 탓이다.
중앙로 뒷골목에는 40년 전통의 미풍해장국 본점이 있다. 그런데 예전만큼은 아니라도 식사 때면 여전히 사람으로 북적인다. 또한, 대로변에는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집이라는 ‘송림반점’이 있다. 오래전 주인이 바뀌었음에도 늘 웨이팅이 있다. 중화요리의 격전지로 불리는 제주에서 말이다. 그러고 보면 원도심에는 노포에 대한 존중이 있는 듯하다. 결코, 음식 맛만으로는 넘볼 수 없는 의리?
◎ 미풍해장국본점 : 제주 제주시 중앙로14길 13
◎ 송림반점 : 제주 제주시 관덕로 2-1
순대나 육사시미를 좋아한다면
서문시장은 구도심의 경계에 있다. 규모와 명성에서 동문시장과는 큰 차이가 나지만, 은근히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정육점에서 고기를 산 후 시장 내 식당에서 구워 먹는 다분히 육지다운 시스템이 특징이다. 물론 상차림 비로 1인만 원을 내야 한다. 진경순대는 서문시장에서만 55년 영업 중이다. 막창에 찹쌀을 넣어 만든 창도름 순대로 유명하며 제주 피순대를 선호하는 도민 단골이 많다.
한아름 정육마트는 서문시장의 터줏대감이다. 한우와 돼지고기의 회전이 빠르고 신선해서 로컬은 물론 관광객에게도 인기가 있다. 정작 주인은 알아보지 못하지만, 우리 부부 또한 단골이다. 제주에서 상시 육사시미를 떠 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2만 원짜리 한 접시는 아내와 내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양이다.
◎ 진경순대 : 제주 제주시 서문로6길 4-5
◎ 한아름 정육마트 : 제주 제주시 서문로6길 6
치과에 갔던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서문시장으로 갈까? 동문시장으로 갈까?”
육사시미와 대방어 둘 중 하나를 고르라는 뜻이다.
순간, 선택 장애가 발작했다. 그리고는 “알아서 사 와.”하며 얼버무리곤 전화를 끊었다.
아내가 돌아왔다. 그런데 비닐봉지가 두 개다. 또 망설였다. ‘무엇을 먼저 먹어야 할까?’
명료한 아내는 육사시미와 대방어가 담긴 접시 두 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그런데 이럴땐, 화이트와인을 마셔야 할까 아니면 레드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