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km/h까지 도달
전기차는 1859년 납 축전지가 발명되면서 1881년 프랑스 발명가 귀스타브 트루베에 의해 영구 사용 가능한 충전식 전기차가 시연됐다. 심지어 100km/h를 돌파했다. 또한 토마스 에디슨이 전기자동차 회사를 설립하면서 미국은 전기차 시대로 진입했다. 이에 미국 도로를 달리는 모든 자동차의 1/3이 전기자동차였을 정도였다.벤츠가 가솔린 자동차 발명
이런 가운데 1879년 칼 벤츠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만들었다. 그리고 1886년 특허까지 얻었지만 상용화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창고에 처박아뒀다. 그런데 1888년에 그의 아내였던 베르타 벤츠가 남편 몰래 새벽에 남편의 자동차 발명품 중 하나인 모델 3(Modell 3)를 가지고 두 아들(15살인 오이겐 벤츠, 14살인 리하르트 벤츠)과 함께 만하임(Mannheim)에서 친정이 있는 포르츠하임(Pforzheim)까지 남편의 도움 없이 직접 몰고 갔다 왔다. 친정집까지는 104km였고, 당시 편도로만 12시간이 걸렸다. 이 운전이 세계 최초 자동차 장거리 운행으로 인정됐다. 그리고 베르타 벤츠는 세계 최초 장거리 자동차 운전 드라이버로 기록됐다. 그리고 베르타 벤츠는 장거리 자동차 여행이 성공하자 유럽 각국 신문사에게 전보를 직접 보내 자동차 여행의 성공을 알렸다. 그러면서 유럽 각국이 가솔린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칼 벤츠는 이에 자극을 받아 3마력 엔진을 탑재한 빅토리아를 출시하면서 상용화에 성공을 했다.전기차 대신 휘발유 자동차가 대세가 된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전기차가 대세였다. 만약 전기차가 계속 대세가 됐다면 에디슨은 막대한 부를 축적할 것으로 예측됐다. 하지만 그 예측이 빗나가게 만든 사건이 발생했다. 그것이 바로 세계대전의 발발과 포드 자동차 설립이었다. 세계대전은 군용 트럭 등이 필요하게 됐다. 그런데 전기차가 군용 트럭으로 나올 경우 문제점이 바로 충전소였다. 가솔린은 휴대가 용이하고, 주유가 용이했다. 하지만 전기차는 납 축전지가 무거웠으며 충전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한 포드자동차는 내연기관 자동차의 가격을 저렴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바로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분업화와 대량생산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전기차 가격이 비싼 반면 휘발유 자동차의 가격은 상당히 저렴해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석유 시추 기술이 발달하면서 석유 가격이 저렴해진 것도 휘발유 자동차의 대량 보급이 가능해지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전기차 기술은 사장이 됐다가 최근 들어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