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2월 22일 미국, 플로리다 매입하다
[역사속 오늘리뷰] 2월 22일 미국, 플로리다 매입하다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4.02.22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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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819년 2월 22일은 미국이 스페인으로부터 플로리다를 매입한 날이다. 플로리다 매입은 미국이 더 이상 13개주가 아니라 점차 영토가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미국은 점차 영토를 넓혀갔고, 오늘날 거대한 영토를 가진 나라가 됐다. 프롤리다는 14000여년 전부터 아메리카 원주민이 거주했던 땅이다. 1513년 스페인 탐험가 후안 폰세 데 레온이 플로리다를 탐험했고, 판필로 데 나르바에스가 1528년 플로리다 서부를 탐험하는 등 스페인이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1559년 펜사콜라에 최초의 정착지를 건설했지만 2년 만에 포기했다. 1565년 세인트 어거스틴에 스페인 식민지가 건설됐다.

프랑스와 충돌

그러나 1564년 프랑스도 관심을 가지면서 잭슨빌에 캐롤라인 요새를 건설했다. 그러면서 스페인과 프랑스가 플로리다 식민지를 차지하기 위해 쟁탈전을 벌였고, 스페인이 완전히 손에 넣게 됐다. 다만 17세기 들어서면서 잉글랜드 이민자들이 점차 북쪽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에 플로리다에는 스페인, 프랑스, 영국의 각축전이 됐다. 프랑스는 루이지애나에서 플로리다 서부로, 영국은 북부에서 밀고 들어왔다. 다만 프랑스는 스페인으로부터 넘겨받은 루이지애나에 집중했다. 영국은 7년 전쟁 중에 스페인 식민지를 대거 점령했고, 7년 전쟁이 끝나자 영국은 스페인에게 점령지를 돌려주는 대신 플로리다 전체를 손에 쥐게 됐다. 이우 미국은 독립전쟁에서 승리를 했고, 미국 동맹국이었던 스페인은 영국으로부터 플로리다를 되찾았다.

미국 개척민 유입

하지만 미국 개척민들이 북부 플로리다를 중심으로 유입이 됐다. 그러면서 점차 스페인의 지배력이 약화됐다. 스페인으로서는 항의를 했지만 플로리다 북부는 스페인계 주민들도 많지 않아 지배력이 약화됐다. 이런 상황에 제1차 세미놀 전쟁에서 미국이 완승을 하면서 1819년 애덤스-오니스 조약이 맺어졌고, 이에 플로리다를 미국이 점령하게 됐다. 이때 스페인은 미국으로부터 500만달러를 받았다. 1845년 플로리다는 주로 승격했고, 남북전쟁 당시에는 남군의 일원으로 북군과 싸웠다. 다만 전력은 약했다. 이후 남북전쟁이 끝나고 플로리다는 계속된 이주와 관광지 개발로 미국의 휴양지로 이름을 떨쳤다. 1920년대에는 1920년대 플로리다 부동산 개발 붐이 일어나 투자자들의 대규모 부동산 투기가 이뤄졌었고 이를 통해 늪지대였던 에버글레이즈에 수많은 도시들이 생겨났다. 또한 1962년에는 케네디 우주센터가 들어서 미국 우주산업의 중심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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