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언 이주일 만나면서
의류사업으로 진출
극장식당으로 돈을 번 안병균은 의류 사업에 뛰어들면서 ‘나산’이라는 이름을 내걸게 됐다. 그것은 1980년 서울 종로5가에 의류도매업체 ‘문화데스크’를 세우고 1982년 고향 지명인 ‘나산’을 따서 ‘나산실업’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러면서 각종 의류 브랜드를 론칭했다. 그 중 여성 의류 브랜드 ‘조이너스’가 성공을 거두게 됐다. 그 이후 꼼빠니아, 메이폴, 트루젠 등의 의류 브랜드를 성공시키게 된다. 이후 1988년부터 사업다각화를 추진하면서 나산관광개발을 세워 레저사업에 손을 댔고, 1990년 나산산업, 나산인터내셔널, 나산CLC 등 그야말로 대기업으로 발돋움을 하게 된다. 그리고 1990년 한 해에 41억원의 소득을 얻으면서 당시 현대, 삼성, 한진, 한화 등의 대기업 총수보다 더 많은 소득세를 납후했다. 1995년 서울 청담동에 있던 영동백화점을 인수해서 ‘나산백화점’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백화점 사업에 뛰어들었다.백화점 사업이 결국
하지만 백화점 사업이 결국 나산그룹을 해체하게 만든 원인이 됐다. 1996년 개국 1년여를 넘긴 민영방송인 광주방송 대주주 대주건설을 광주방송 지분과 함께 인수했고, 충남방적으로부터 한길종합금융까지 인수하면서 대기업으로 커나갔으며 한국프로농구 출범이 추진됐던 1996년말 중소기업은행 실업 농구단 소속 선수들을 인수하면서 광주광역시를 연고로 하는 나산 플라망스 프로농구단을 창단했다. 하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과 차입경영으로 경영에 어려움이 발생하자 1995년 구조조정을 진행했지만 1997년 외환위기 여파를 이겨내지 못하고 1998년 최종 부도를 맞으면서 그룹 해체 수순을 밟게 되면서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