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혁명 후유증
카나리아 작전
4월 15일부터 시작된 천안문 시위는 6월 4일이 되자 절정에 이르렀고, 결국 중국 정부는 전차들을 동원해서 시위대를 강제적으로 해산했다. 그 과정에서 유혈 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베이징은 그야말로 죽음의 도시가 됐다. 시민들은 군인들에게 짓밟히고 탱크와 장갑차가 지나가면서 살아 있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천안문 6.4항쟁에서 시위대는 진압됐고, 해산됐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중국 정부는 시위 주동자에 대한 대대적인 수배작전에 들어갔다. 원래 중국 정부는 시위 주동자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했지만 일주일만에 약속을 번복한 것이다. 이에 시위 주동자 일부는 외부 세력의 도움을 받아서 국외로 망명했다. 이들을 돕기 위한 작전이 ‘카나리아 작전’이다. 서방 국가들이나 대만 등에서 이들 시위주동자에게 비자를 발급해주거나 비행기나 배 등 수송수단을 제공해주기도 했다.중국 정부의 대응
중국은 천안문 6.4 항쟁 이후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더욱 옥죄는 작업을 했다. 개혁개방으로 인해 학문과 예술의 자유 움직임이 있었지만 이 사건 이후 대학생의 숫자를 대폭 감축시켰으며, 대학교에서 군사훈련이나 사상교육을 했다. 출판물에 대한 탄압도 이어지면서 반정부 유포 혐의를 받는 신문과 잡지는 모두 폐간 처분했다. 문화대혁명이 중국 내에 있는 문화재를 파괴하는 등 하드웨어를 파괴했다면 천안문 6.4 항쟁 이후 출판과 예술 그리고 학문에 대한 탄압은 중국의 소프트 파워를 파괴하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중국은 과거 중국 문화와 완전히 단절됐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해외로 망명했던 시위주동자들이 21세기 들어서 중국의 개혁개방을 하자 다시 모국으로 돌아가서 기술, 과학 발전에 이바지하게 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줬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