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내가 변해야 한다. 바꾸려면 철저히 바꿔라. 극단적으로 얘기해 농담이 아니야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봐.
출근부 찍지 마라. 없애라. 집이든 어디에서든 생각만 있으면 된다. 구태여 회사에서만 할 필요 없다. 6개월 밤을 새워서 일하다가 6개월 놀아도 좋다. 논다고 평가하면 안 된다. 놀아도 제대로 놀아라.
뛸 사람은 뛰어라. 바삐 걸을 사람은 걸어라. 말리지 않는다. 걷기 싫으면 놀아라. 안 내쫓는다. 그러나 남의 발목은 잡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왜 앞으로 가려는 사람을 옆으로 돌려놓는가?
불량은 암이다. 삼성은 자칫 잘못하면 암의 말기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생산 현장에 나사가 굴러다녀도 줍는 사람이 없는 조직이 삼성전자이고, 3만 명이 만들고 6천 명이 고치러 다니는 비효율, 낭비적인 집단인 무감각한 회사다.
이다.프랑크푸르트 선언 한 이유
이건희 회장이 프랑크프루트 선언을 한 이유는 일본인 고문인 후쿠다 다미오(福田民郞)에게서 받은 이른바 ‘후쿠다 보고서’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1987년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 회장으로 취임했지만 연매출 10조원대였고, 재계 1위 자리는 현대그룹에게 내어줬다. 그러면서 이건희 회장은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고 포부를 밝혔고, 1988년 흑자 전환됐으며 반도체 메모리부분 1위를 탈환했다. 하지만 모든 사업은 제자리걸음이었고, 점유율은 경쟁 업체에 밀리기 시작했다. 휴대폰은 불량률이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원들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당시에는 무조건 많이 만들어 판매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런데 이건희 회장이 유럽 출장 중에 후쿠다 보고서를 읽었다. 보고서 내용은 삼성은 일본 기업 배끼기에 급급하다면서 삼성만이 제일이라는 자만에 빠져 창조적 도전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삼성 디자인은 어디서 본 것 같은 디자인이기 때문에 세계시장에서 이길 수 없고, 삼성 역시 일류기업이 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휴대폰 화형식까지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량률은 줄어들지 않았다. 이에 급기야 1995년 구미사업장에서 불량 휴대전화 15만대의 화형식을 열었다. 디자인도 질적 변화를 이뤄내면서 삼성전자는 1966년 ‘디자인 혁명의 해’를 선언했다. 그러면서 2002년 이건희폰으로 불리는 애니콜이 1천만대 판매고를 올렸다. 삼성전자가 초일류 대기업이 된 것도 프랑크푸르트 선언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건희 회장이 “자식과 마누라 빼고 다 바꿔라”는 말로 삼성의 조직 문화는 물론 품질 경영 등을 하면서 반도체, 전자 등을 이건희 회장이 주도하면서 황금기를 열었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