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한양대화재
[역사속 경제리뷰] 한양대화재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4.06.19 13: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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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소방청
사진=소방청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한양대화제는 세종대왕 8년(1426년) 한양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을 말하며, 조선왕조 역사상 가장 큰 화재사건이었다. 당시 세종대왕과 왕세자인 문종 모두 사냥 겸 군사훈련인 ‘강무’에 나갔기 때문에 소헌왕후가 직접 방재작업을 진두지휘했다. 당시 소헌왕후는 금성대군을 임신한 상태였는데 정승 황희가 통상적인 보고절차를 생략하고 왕후에 직접 보고했다.
조선시대에는 왕후는 정치적 권한을 가진 인물이 아니었다. 따라서 정무에 개입할 수 없었다. 그러나 워낙 화재가 급박했고, 세종대왕과 왕세자 모두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소헌왕후가 정무에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2200채 잿더미로

1426년 2월 15일 인순부의 종 장룡의 집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불이 났고, 불어온 서북풍을 타고 맹렬히 번지면서 하루동안 집 2200채가 잿더미가 됐고, 32명이 불에 타죽었다. 세종대왕은 강원도 횡성에 있었기 때문에 보고를 받고, 진두지휘를 할 수 없었다. 세종대왕은 연락을 받자마자 바로 환궁했다. 방화이기 때문에 결국 체포령이 떨어졌고, 여러 사람이 체포됐다. 그중에 누가 범인인지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당사자 모두 능지형에 처해졌고, 가족들 중에 남자들은 교형에 쳐해지고, 처와 딸은 노비가 됐다. 이재민들에게 구호 양곡을 나눠줬다.

한양에도 소방 시스템을

이날 화재를 계기로 한양에도 소방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했다. 일단 길을 넓히는 작업을 했고, 방화장(防火阻燃墻)을 쌓게 했다. 도한 개인집에는 5간, 10간마다 우물을 파도록 했고, 종묘와 대궐 안, 종루의 누문에는 소화기를 비치하도록 했다. 아울러 병조 예하에 금화도감을 설치해서 화재 예방을 하게 됐다. 금화도감이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설치된 소방기관이었다. 금화군은 높은 종루에 올라가 화재를 감시하고, 화재 발생 시 출동해서 불을 끄는 활동을 했으며, 방화범을 잡는 업무까지 했다. 금화군은 삼베를 길게 잘라 막대기에 이어 물을 적셔 사용하는 ‘불채’와 쇠갈고리, 화재 현장에 진입하기 위한 도끼 등을 소지했다. 금화군의 방울소리가 울리면 백성들은 화재에 대비하기 위해 집집마다 물을 길러 담아두는 등 화재에 대비했다고 한다. 금화군 창설 이후 한양에서는 이전과 같은 대화재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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