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티팝의 대표곡
푸른 산호초는 일본 시티팝의 대표곡이다. 시티팝은 미국 AOR이나 남미쪽 스타일 음악의 영향을 받은 1980년대 전후 일본에서 유행한 도시적인 테마를 가진 대중음악을 말한다. 그것은 1970년대부터 일본은 미국 영향을 겹쳐 서구권 팝 음악을 대거 수입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일본 가요 품질을 끌어올리게 됐다. 일본 가요계의 프로듀싱 능력이 진일보 하게 되면서 일본 가요 즉 J팝의 품질을 한 단계 올리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일본 시티팝이 지금 들어도 촌스럽지 않은 것은 일본의 경제상황과 맞물려 있다. 일본 경제가 1970년대 빠른 성장을 이루면서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 경제대국을 이뤄냈다. 당시 일본 공산품은 품질이 좋고 가격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미국에서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그로 인해 대미 무역 흑자를 이뤄냈다. 그것은 일본 국민의 자존감을 높이게 만들었고, 이에 미국 문화가 빠르게 수입되면서 일본화를 하게 됐다. 그것은 빠르고 경쾌한 음악으로 희망찬 미래를 이야기하는 그런 노래가 됐고, 일본 시티팝이 됐다. 실제로 푸른 산호초 뮤직비디오를 보면 비행기를 배경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것은 일본 경제가 그만큼 호황을 누렸다는 상징이 됐다.잃어버린 30년
1980년대 일본산 철강, 섬유, 전자제품, 자동차, 반도체 등이 미국으로 수출을 많이 했고, 미국은 점차 일본산 공산품에 대한 고민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1980년대 초는 대미 무역 흑자를 이뤄내면서 일본은 그야말로 제2차 세계대전 패망국에서 벗어나 경제대국을 이뤄낼 수 있었다. 그리고 미국은 이에 대한 견제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1985년 플라자합의를 이뤄냈는데 달러화-엔화 교환가치를 고정환율에서 변동환율로 전환하게 된다. 이에 엔화환율은 급락을 하면서 엔고 현상을 겪게 됐고, 수출에서 막대한 충격을 받게 된다. 수출 기업들이 경쟁력을 잃어가자 정부는 금리인하 정책을 선택하게 되고, 금리가 대폭 낮아지게 된다. 그것은 수익률이 높은 자산으로 투자처를 옮기게 되는데 낮은 금리로 대출받아 부동산에 매입하게 된다. 그로 인해 부동산 시장은 비정상적으로 급등을 하게 되고, 주가도 비정상적으로 상승하게 된다. 그러면서 버블경제 시기로 접어들게 된다. 그리고 1991년 4월 일본 버블경제거 터지게 되면서 그 충격이 잃어버린 10년 혹은 잃어버린 30년을 낳게 된다.과거 영화에 매달리게 된 일본 국민
일본 국민으로서는 버블경제 이전 즉, 1980년대 시티팝에 대한 향수를 갖고 살 수밖에 없었다. 다른 나라의 음악 특히 한국 가요계는 기획사를 중심으로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반면 일본 가요계는 정체기에 접어들었다. 그것은 일본 국민의 고령화 등도 한 몫을 하게 됐다. 그러면서 새로운 음악에 대한 도전보다는 오히려 과거 음악에 대한 리메이크가 많이 일어난 것은 물론 ‘팬덤’ 위주의 음악을 추구하면서 점차 대중과는 멀어지는 음악이 됐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 J팝이 과거 영광을 재현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그런 상황에서 뉴진스 멤버 하니가 푸른 산호초를 부르면서 일본 국민에게는 1980년대 초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됐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