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에만 가면
일본에는 ‘에도병’이라는 질병이 있었다. 지금의 도쿄인 에도에만 가면 사람들이 기운이 없어지고 누워 있다가 사망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그런 사람이 에도를 벗어나 지방으로 가면 완쾌됐다. 이에 에도에만 있는 질병이라고 해서 ‘에도병’이라고 불렀다. 에도병은 ‘각기병’이다. 에도 시대에 각기병이 유행하게 된 것은 쌀에 대한 도정기술이 발달하면서 백미로 밥을 지어 먹었기 때문이다. 백미는 현미보다 밥맛이 좋기 때문에 에도 사람들은 백미를 현미보다 선호했다. 문제는 에도 시대에 ‘화재’가 발생하는 것을 염려하면서 집안에 있는 부엌을 없애버렸다. 이에 에도 주민들은 반찬을 사먹어야 했다. 다만 반찬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서민들은 반차 살 돈이 없어서 백미만 먹거나 간장만 해서 먹는 경우가 발생했고, 그러면서 비타민 B군의 결핍이 생겼고, 이에 각기병이 크게 유행할 수밖에 없었다.메이지 유신 이후
에도병이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군에 각기병 환자가 많이 발생했다. 특히 일본 해군 내에 심각했다. 그것은 장거리 항해에 나서면서 흰쌀밥만 먹는 수군이 늘어났다. 왜냐하면 수군들 입장에서도 백미는 무료로 제공했지만 반찬은 사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군 군의관 타카기 카네히로(高木兼寛 1849-1920)가 그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시작했고, 결국 ‘식단’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 이에 비타민 B가 풍부한 보리, 잡곡, 육류까지 도입했다. 그 과정 속에서 카레라이스가 만들어졌다. 당시 일본은 탈이입구(脫亞入歐)룰 추구했다. 즉,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을 모방하자는 주의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영국에서 먹는 ‘카레’를 선보이면서 일본 해군들 사이에서 카레라이스가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각종 채소에 육류까지 포함해서 흰쌀밥에 덮밥 형식으로 먹는 것이기 때문에 인기를 끌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카레라이스가 일본 해군의 주요 식단 중 하나가 됐고, 일본 국민 사이에서도 카레라이스가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더군다나 카레라이스는 장거리 항해에 걸맞는 음식이었다. 장거리 항해를 하면서 채소와 육류의 보관 상태가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이것을 익혀서 특유의 향으로 가리게 되면서 일본 해군 병사들 사이에서는 먹을만한 음식이 된 것이다.한국으로 전파되면서
한국에서는 일본식 카레라이스가 전파되면서이다. 하지만 카레라이스의 대중화는 오뚜기가 카레라이스를 만들면서이다. 당시에는 먹을 것이 부족했기 때문에 영양불균형이 심각했는데 오뚜기 카레라이스를 만들면서 그에 따라 영양불균형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었다. 따라서 먹을 것이 없었던 1970년대까지 오뚜기 카레라이스는 우리 국민 식탁을 책임졌다. 그리고 오뚜기가 3분 카레를 만들면서 간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게 됐고, 1980년대 이후 경제적 사정이 나아지면서 야외 활동이 많아지자 오뚜기 3분 카레가 상당한 인기를 얻게 됐다. 그러면서 오뚜기가 현재와 같은 식품회사로 우뚝 설 수 있게 됐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