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로마시대 목욕탕
[역사속 경제리뷰] 로마시대 목욕탕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4.07.18 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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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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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고대 로마는 목욕탕에 진심이었다. 하지만 초반부터 목욕 문화가 퍼진 것은 아니었다. 고대 로마인들은 목욕을 신체를 나약하게 만든다면서 금지를 했을 정도이다. 목욕 문화가 퍼진 것은 고대 그리스 때 온천에서 목욕 문화가 생기면서이다. 고대 로마인들은 고대 그리스를 선진 문물이라고 취급하면서 고대 그리스 문화를 따라하는 습성이 강했다. 그러면서 목욕문화가 부유층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그러나 그 문화는 개인 집에서 목욕을 하는 것이지 공중목욕탕에서 목욕하는 문화는 아니었다.

수로 개발과 로마 대화재 이후

고대 로마인들이 공중목욕탕 문화를 갖게 된 것은 우선 수로의 개발 때문이다. 수로가 생기면서 많은 물을 사용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네로 황제 때문이다. 로마대화재가 발생하면서 로마 대부분이 잿더미가 되면서 로마 시내를 재건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개인이 물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미 고대 로마인들은 목욕 문화가 익숙해졌기 때문에 고대 로만인의 불만은 높아질 수밖에 없었고, 이에 네로 황제는 공중목욕탕 보급에 나섰다. 이에 아그리파의 아그리파 목욕탕, 네로 황제의 네로 목욕탕, 티투스 황제의 티투스 목욕탕, 트라야누스 황제의 트라야누스 목욕탕, 카라칼라 황제의 카라칼라 대형목욕탕,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디오클레티아누스 목욕탕, 콘스탄티누스 1세 황제의 콘스탄티누스 목욕탕 등이 출현했다. 또한 고대 로마인들이 공중목욕탕을 즐길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온돌의 개발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온돌과는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온돌은 아니었다. 이에 아궁이 근처는 온탕이, 그 중간은 미지근한 탕이, 아궁이에서 먼 곳은 냉탕이 배치됐다.

온갖 문화시설 배치

공중목욕탕이 생겨나면서 덩달아 각종 문화시설도 배치됐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근육운동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됐다. 110년 트라야누스 황제는 목욕탕에 정원, 도서관, 산책로, 수영장 등을 갖췄다. 그러면서 목욕탕은 단순히 몸을 씻는 장소가 아니라 사교의 장소가 됐다. 로마 시민들은 오후에 목욕탕을 들렀는데 목욕 뿐만 아니라 체력 단련,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며 정원을 거닐거나 일광욕을 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강연실에서 강연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오락실과 연회실 등에서 사교를 했다. 오죽하면 네로 황제 철학교사인 세네카는 “목욕과 포도주와 비너스가 우리를 타락시키고 있다. 그러나, 목욕과 포도주와 비너스는 우리의 삶이다”라고 규정했다.

목욕탕 문화가 점차 사라진 이유는

로마가 무너지고 중세 시대로 넘어가면서도 목욕 문화는 초반에는 널리 퍼졌다. 하지만 중세시대를 지나면서 목욕 문화가 사라지게 된 것은 ‘매춘’ 때문이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공중목욕탕 근처에는 매춘부가 있었다. 고대 로마에서는 성매매가 도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중세시대가 되면서 기독교 문화가 자리매김하자 점차 성매매는 부도덕한 행위로 취급을 받게 됐다. 그러면서 공중목욕탕에 가는 것은 ‘성매매’를 하는 나쁜 행위가 되면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게 됐다. 이에 목욕한다는 것 자체가 부정스런 행위로 취급을 받게 됐다. 결국 목욕 문화 자체가 부정한 것으로 내몰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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