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8월 1일 광화문광장 완공
[역사속 오늘리뷰] 8월 1일 광화문광장 완공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4.08.01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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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2009년 8월 1일은 광화문 광장이 완공된 날이다. 경복궁 광화문과 세종대로 사거리 사이에 조성된 시민공간이다. 원래 조선시대에는 육조거리이다.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천도를 하면서 경복궁을 건립하고 광화문 앞에 양옆으로 육조 건물을 지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를 거닐 수 있게 하면서 육조거리가 됐다. 일제강점기 당시 육조건물을 헐어버리면서 ‘광화문통(光化門通)’으로 이름이 변경했다. 조선총독부가 광화문 자리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건축하면서 육조거리 도로를 확장하면서 세종로의 원형이 됐다.

2009년 이후

광복 이후인 1968년 서울시는 이순신 장군 동상을 세웠다. 그러나 2009년 이전까지만 해도 20차로 도로였다. 그러다가 2008년 광화문을 광장으로 바꾸겠다는 계획을 세우면서 건설에 들어갔고, 2009년 8월 1일 개장했다. 중앙분리대를 광장으로 바꾸고, 세종대왕 동상을 이순신 장군 동상 뒤에 세웠다. 그리고 세종대로는 12차로로 축소했다. 그러면서 시민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 하지만 광화문 광장이 서구 광장과는 다르게 의도적으로 세운 관제 광장이라는 점이 다르다. 그것은 시민들이 쉽게 접근이 안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20차로 도로를 광장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생활권과 상권 보행동선이 괴리가 됐다는 점에서 시민의 접근이 용이하지 않다. 이에 재조성 작업에 들어가면서 오늘날 광화문 광장이 됐다.

시민 휴식 공간이기보다는 오히려 정치 시위 장소로

광화문광장은 원래 시민 휴식 공간으로 만들어졌지만 애초의 의도와는 다르게 정치 시위 장소가 됐다. 그것은 청와대와 가깝기도 했지만 조선시대에도 시위 장소였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도 광화문 앞에서 유생들이 ‘지부상소(도끼상소)’를 하는 등 그야말로 시위장소였다. 게다가 청와대가 가깝기 때문에 현대에서는 정치 시위 장소가 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가 삼권분립 국가이기도 하지만 국민은 행정부에 대한 위치가 입법부, 사법부 보다 다소 위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주로 청와대 가까운 곳에서 정치 시위를 하게 됐다. 아울러 정부서울청사가 있기 때문에 정치 시위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광화문 광장은 정치 시위를 할 수 없는 장소이다. 그럼에도 정치 시위를 하면서 그에 따라 박근혜 탄핵 집회 등도 광화문 광장에서 행해졌다. 또한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에는 광화문 광장에서 거리응원이 이뤄졌고, 전세계가 거리 응원에 흥미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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