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8월 12일 네르친스크 조약 체결
[역사속 오늘리뷰] 8월 12일 네르친스크 조약 체결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4.08.12 0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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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689년 8월 12일은 네르친스크 조약이 체결한 날이다. 청나라와 루스 차르국(러시아) 사이에 맺어진 국경 조약이다. 러시아 제국은 유럽의 조그마한 나라였지만 명나라 말기부터 아시아 동부 지역 흑룡강 상류 지대에 진출해 네르친스크와 알바진 등지에 진지를 구축했다. 그러면서 러시아군은 제멋대로 살인과 약탈을 행했다. 청나라가 삼번의 난을 평정하자 러시아 제국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1685년 5월 청나라 군사 1만 5천여명이 알바진을 포위하자 러시아군은 항복을 했고, 청나라는 러시아 제국 침략을 저지하기 위한 싸움이었다는 점에서 러시아 군인 모두 석방하고 침략하지 않도록 타이르고 본국으로 송환했다.

러시아와 충돌

하지만 1686년 다시 러시아가 알바진을 침략하자 2월 청나라는 다시 알바진을 공격했고, 러시아군의 손실이 상당했다. 그러자 러시아 황제는 태도를 바꿔 강화를 맺어 국경선을 정하자고 했다. 1688년 러시아와 청나라 강화 교섭 사절이 네르친스크로 향하려고 했지만 몽골 기병에 의해 가로막혀버렸다. 1689년 다시 교섭이 진행됐다. 그리고 네르친스크 조약을 체결했다. 내용은 흑룡강의 외지류(外支流)인 고르비차 강과 외흥안령(外興安嶺)을 양국 간의 국경선으로 하는 것과 월경자(越境者)의 인도와 처벌 문제, 양국 민간인의 자유 교역 허용 등이었다.

중화사상 벗어난 대등-평등 조약

네르친스크 조약은 중국 입장에서는 중화사상을 벗어난 최초의 ‘대등-평등 조약’이었다. 중국 왕조는 중화사상에 입각해 주변국들은 야만족으로 간주하고 이에 따라 타국과 평등한 조약ㅇ르 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런 이유로 조약에는 러시아어, 만주어 그리고 라틴어로 작성됐다. 즉, 중국 입장에서 청나라 말로 조약을 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청나라와 러시아 제국 입장에서 모두 불평등 조약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이유로 청나라가 아편전쟁으로 영국에게 일방적으로 패배 당하자 러시아도 이때 맺어진 네르친스크 조약을 불평등 조약으로 간주하여 파기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아이훈 조약으로 아무르강 이북 영토가 러시아로 넘어간다. 제2차 아편전쟁 때는 중재의 대가로 베이징 조약을 체결해 연해주를 얻어내면서 외만주를 모두 러시아가 차지하면서 중국은 동해가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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