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56년 10월 23일은 헝가리 노동자당 정권에 저항해 일어난 헝가리 민주화운동의 하나인 헝가리 혁명이 일어났다. 11월 10일까지 일어났으며 소련군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실패했다. 냉전시기 동구권에서 벌어진 민주화운동 중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결국 동구권과 소련이 무너졌을 때 트리거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만큼 헝가리혁명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높은 편이다.
소련에 의한 헝가리 공산화
1946년 헝가리는 소련에 의해 공산화가 됐다. 그리고 라코시 마차시(Rákosi Mátyás, 1892~1971)는 폭압적 정치를 펼쳤다. 라코시는 스탈린의 지지를 등에 업고 반대파를 티토주의자로 몰아 대규모 숙청을 벌였다. 그리고 산업시설 국유화 및 농업 집단화를 추진했다.
하지만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하면서 소련은 니키타 흐루쇼프가 집권을 했고, 스탈린 격하 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면서 라코시 정부는 힘을 잃게 됐다.
앞서 언급한대로 국유화 및 농업 집단화가 헝가리 경제 위기를 가중시키면서 민심이 이반됐다. 그리고 흐루쇼프는 동유럽 각국에 독재와 경제의 통제를 완화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라코시는 점차 그 힘을 잃어가게 됐고 너지 임레가 수상을 맡게 됐다.
그러나 라코시는 반격에 나섰고, 너지를 수상에서 해임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러자 헝가리 시민들은 라코시에 반발하기 시작하면서 혁명의 아침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스탈린 동상 철거
1956년 10월 23일 부다페스트에서 2만명이 모인 가운데 스탈린 동상이 철거됐다. 그리고 시위를 벌였다. 결국 유혈 진압이 이뤄지면서 첫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본격적 혁명이 시작됐다. 이에 헝가리에 주둔 중이던 소련군이 부다페스트에 진입하면서 시민군과 소련군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졌다. 그리고 봉기는 더욱 격화됐다.
그러는 사이 너지 임레가 이끄는 신정부는 혼란을 진정시키기 위해 일당제 폐지, 비밀경찰 폐지 등을 발표했고, 이것이 소련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그만두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러자 너지 임레는 헝가리 중립을 선포하고 바르샤바 조약기구 탈퇴, 소련군의 러시아 철수를 요구했다. 이에 흐루쇼프는 대규모 병력을 헝가리에 투입했다. 결국 헝가리군은 소련군에 의해 무장해제 됐다. 그러면서 2주간의 혁명은 엄청난 희생자를 내고 끝냈다.
너지는 유고슬라비아 대사관으로 피신했지만 결국 소련에 체포됐고, 처형당했다. 그러면서 헝가리 혁명은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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