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11월 7일 국가파시스트당 창당
[역사속 오늘리뷰] 11월 7일 국가파시스트당 창당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4.11.07 0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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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토 무솔리니
베니토 무솔리니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21년 11월 7일은 이탈리아 로마에서 국가파시스트당이 창당된 날이다. 이탈리아는 물론 20세기 세계사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다. 파시즘이라는 정치이념이 파생되기도 했다. 국가파시스트당은 베니토 무솔리니가 이끌었던 정당으로 강력한 국가주의와 전체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민족주의, 권위주의, 반공주의를 내세우며 강력한 국가를 건설하고 사회질서를 확립한다는 명분으로 국민들을 결집시켰다. 파시스트당은 무솔리니가 1919년 이탈리아에서 제1차 세계대전 전후 처리가 불공평했다면서 ‘전투파쇼’라는 조직을 만들었던 것이 시초였다. 검은 셔츠단이라는 정치 깡패를 조직해서 반대파를 탄압했다.

무솔리니 총리로 임명

1922년 검은 셔츠단은 로마로 진군했고,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무솔리니를 총리로 임명했다. 1943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 상태에 놓이자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무솔리니를 총리에서 해임했고 당을 해산시켰다. 다만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의 정당인 공화 파시스트당이 부활했다가 1945년 해산됐다. 파시즘이 나타나게 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 철학자 조반니 젠탈레가 파시즘의 이론적 기초를 세웠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이탈리아가 패전을 했고, 이에 전후처리 과정에서 이탈리아 국민 중 일부가 전후처리가 공평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것이 곧 파시즘으로 이어진 것이다. 파시즘은 국가주의적, 군사적, 독재적인 특성을 갖춘 정치 체계로 정치적인 중심화, 국가의 우월성 강조, 개인의 복종을 강조하는 이념이였고. 여러 국가에서 파시스트 운동이 나타나면서, 이 이념은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이탈리아의 파시즘이었고, 독일의 나치즘이었다. 국수주의와 대중주의를 통해 제1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을 극복하겠다는 것이다. 즉,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은 자신들에게 피해를 주는 국가이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국수주의와 대중주의 이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집권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파시즘의 몰락

파시즘의 몰락의 직접적 원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를 했기 때문이다. 나치 독일, 파시스트 이탈리아, 일본제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를 하면서 이들 국가의 힘과 영향력이 사라졌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이 승전을 했다고 해도 많은 국가들이 전쟁의 비극적 결과를 직면하면서 민주주의와 다자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국제사회가 깨닫기 시작했다. 즉, 국수주의와 대중주의가 인류를 행복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아울러 전후 복구와 함께 소련의 등장은 파시즘의 몰락을 가져왔다. 서구유럽이 소련과 동구권 공산주의라는 새로운 적을 맞이하면서 더 이상 파시즘으로 서구유럽의 질서를 정립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와 더불어 인권이 향상됐다는 점에서 파시즘의 몰락을 가져왔다. 국수주의와 대중주의가 결국 인권의 파멸을 이끈다는 것을 깨달은 인류는 더 이상 파시즘을 신봉하지 않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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