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11월 18일 빌헬름 텔 석궁으로 사과 맞춰
[역사속 오늘리뷰] 11월 18일 빌헬름 텔 석궁으로 사과 맞춰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4.11.18 0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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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윌리엄 텔 한 장면.
영화 윌리엄 텔 한 장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307년 11월 18일은 스위스에 사는 전설의 석궁 빌렐름 텔이 아들의 머리 위에 사과를 얹어 쏘아 맞춘 날이다. 물론 빌헬름 텔은 전설속의 인물이고 가공의 인물이다. 하지만 전설은 스위스에서 내려오면서 점차 구체화되면서 날짜까지 구체화됐다. 사실 활로 가족의 머리에 있는 물건을 맞추는 전설은 어느 지역에서나 있는 전설이다. 예컨대 페르시아 ‘아라쉬’ 설화가 대표적이다. 그것을 신성로마제국 극작가 프리드리히 실러가 희곡으로 만들었고, 이것이 널리 퍼지면서 유명해졌다.

반전제주의 사상

프리드리히 실러는 독일 서남부 뷔르템베르크 공국에서 1759년에 태어난 인물이다. 신성로마제국 인물이다. 실러는 엄격한 전제주의적 생활에 치를 떨면서 반전제주의이면서 반귀족적인 사상을 갖게 됐다. 이런 가운데 실러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을 읽고 감명 받아 첫 작품인 군도를 발표한다. 하지만 뷔르템베르크 공국의 오이겐 공작은 군도의 내용이 반전제적이면서 반귀족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불같이 화를 내고 실러를 구금시켰고, 의학 서적 이외에 어느 서적의 집필행위도 모두 금지시키면서 실러는 탈출해서 다른 지역으로 가서 ‘가명’으로 살아간다. 그러면서 가난한 생활을 했지만 집필은 놓지 않았다. 또한 괴테를 만나면서 친분을 쌓게 되면서 점차 인정을 받아 1802년 귀족이 되면서 성공적인 삶을 누리게 됐다. 그 과정에서 빌헬름 텔 희곡을 집필하게 됐다.

합스부르크 가문 지배 받은 스위스

희곡 빌헬름 텔은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를 받았던 스위스를 배경으로 한다. 사냥꾼 빌헬름 텔이 잔인한 영주 헤르만 게슬러의 음모를 이겨내고 복수한다는 내용이다. 그 과정에서 아들의 머리 위에 사과를 얹고 석궁으로 사과를 맞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희곡 빌헬름 텔의 전체 내용은 스위스가 합스부르크 가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게 된다는 내용인데 사람들 뇌리 속에서는 아들 머리 위에 있는 사과를 맞추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 쉴러가 빌헬름 텔은 집필하게 된 것은 신성로마제국에서 독일의 민족적 자각과 연결된다. 17세기 30년 전쟁을 치르면서 합스부르크 가문의 신성로마제국 영향력이 상실되게 된다. 그러면서 독일 민족의 자각이 일어난다. 그 과정에서 괴테의 문학 등이 꽃 피우게 되는데 쉴러 희곡 빌헬름 텔도 연관된다. 즉, 빌헬름 텔이 합스부르크 가문으로부터 스위스 독립을 쟁취했듯이 신성로마제국 역시 합스부르크 가문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꿈꾸면서 만든 희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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