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박람회
[역사속 경제리뷰] 박람회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4.11.20 1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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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1년 런던엑스포
1851년 런던엑스포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박람회는 ‘전시사업’의 성격을 갖는다. 다만 박람회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됐지만 그 성격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가장 오래된 박람회는 구약성서 에스터 1장에 나온다. 아히수에로왕이 왕국의 번영과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는 재화들을 전시하고 축제를 베풀었다고 돼있다. 증세에서는 유럽에서 국왕이나 귀족 등이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진상품이나 전리품 등을 진열하게 베푸는 축제의 성격이 강했다.
절대왕정시대에는 식민지에서 가져온 각종 문화재 또는 사람 등을 전시함으로써 절대왕정의 권위를 나타내는 성격이 강했다. 그러다가 산업혁명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현대의 박람회 성격을 갖추게 됐다. 기업가 입장에서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박람회를 통해 자신의 물품을 전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소비자들 역시 박람회를 통해 새로운 물품을 경험하는 기회를 얻으면서 그에 따라 물품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1851년 런던엑스포

박람회를 1851년 런던엑스포 전후로 나눌 수 있다. 그 이전까지 박람회는 그냥 왕이나 귀족들이 베푸는 시혜성 축제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런던엑스포를 계기로 국가가 해외에 홍보하는 성격이 강해졌다. 그것은 제국주의와 맞물려 있다. 영국은 런던엑스포에서 증기기관, 직조기계, 철도 등 다양한 신기술을 선보였다. 그러면서 영국이 선진국이라는 것을 해외에 홍보했다. 이에 런던엑스포는 제국주의 성격이 강하게 보이면서 나라 홍보의 성격이 강했다. 다만 런던엑스포가 갖는 것은 많은 것을 바뀌게 했다. 그동안 박람회는 왕이나 귀족들이 베푸는 시혜성 축제 성격이었다면 런던엑스포는 기업과 소비자를 연결시켜주는 징검다리 성격이 강했다. 1만 3천개의 전시 제품으로 인해 당시의 최신 정보와 상품 등을 소비자들이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게 됐다. 런던엑스포는 여행산업을 등장하게 됐다. 전 유럽에서 런던엑스포를 관람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런던을 방문하게 되면서 여행산업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탄생하게 됐다. 과거에는 왕이나 귀족 등만 여행을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자본가, 기업가 등이 런던엑스포를 관람하면서 동시에 런던 시내를 구경하면서 여행에 따른 파생효과를 누리게 됐다. 이것은 결국 국제 교류를 하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양한 산업과 기술이 런던으로 집약됐고, 런던을 통해 세계로 나아갔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런던으로 보였고, 그 사람들에 의해 새로운 정보가 세계로 전파됐다.

국가주의 성격 강했던 박람회

1851년 런던엑스포 이후 많은 국가에서 박람회를 열기 시작했다. 그것은 국가주의적 성격을 띈 박람회였다. 박람회를 여는 것 자체로 자신의 국가는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는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1차와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더 이상 국가주의는 인류를 파괴로 안내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박람회 성격도 바뀌게 됐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바뀌게 되면서 더 이상 ‘국적’은 아무런 의미가 되지 않게 됐다. 이런 이유로 박람회 역시 국가가 나서서 하는 것보다는 기업이나 단체 등에서 주도를 하는 것으로 바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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