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 매년 풍요로운 결실의 향연과 조상의 은덕를 기리는 명절, 한가위에는 감사한 마음을 깊이 새겨본다. 싯귀처럼 어디 대추 한알, 한톨의 밤이 그저 생길리 없다.
심은 꿈, 돌본 정성, 비바람을 견딘 (weather) 인고의 결과이다. 묘한 일은 집근처 감나무도 도시로 떠나 빈집이 되면 감도 열리지 않고 시들하다. 돌봄이 없어서 그런 것으로 생각된다.
한방의 약도 짓는 정성, 달이는 정성, 복용하는 정성의 삼성(三誠)이 있어야 효험이 있다고 한다. 정성誠은 말(言)한 바를 이루는(成) 것이니 언행일치(“walk the talk”)이다.
그래야 믿음(信)이 생겨난다. 믿음은 사람이 (人)하는 말(言)씀이다. 바꿔 말하면 말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성경의 ‘말씀’으로 여기면 어떨까? 견공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사람인 변 대신 개구변에 말씀언자를 쓰면 ‘어르렁거릴 은’자가 된다. ‘짓는 개는 물지 않는다’란 말이 있지 않는가?
하찮다는 뜻이기도 하고 개가 할 일을 인간이 뺴앗는다면? AI가 인간의 일을 빼앗는다고 일 사슬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러면 무슨 소통이 가능할까? 즉 말이 아니라 개짓는 ‘소리’에 불과 한 것이다. 견공에겐 그것이 소명이지만 사람이 그 일을 해서야 견공에게도 부끄럽지 않은가? 인간은 신과성(信誠)을 신성(神聖)시 해야 하겠다.
믿음, 즉 신뢰란 사회적자본의 부재로 야기되는 비용과 시간의 허비는 너무도 크다. ‘신뢰의 속도’ 저자인 Stephen R Covey박사는 2010년 한국은 아직 ‘저(低)신뢰 사회’에 머물러 있다고 꼬집은 바 있다.
당시의 조사에 의하면 한국인은 28%가 타인을 신뢰할 수 있다고 했다. 같은 질문을 받은 북유럽 사람들은 68%였다니 현저한 차이가 있다. 상호신뢰는 말과 소통, 협업에서 효율과 효과가 높아지는 매우 중요한 덕목일뿐 아니라 경제 활력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는 신뢰가 높은 사회는 그렇지 못한 사회보다 효율성이 186%나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고 하였다. 이것은 필자가 보기에는 너무 과소평가된 듯하다. 또 10년이 지난 한국현실은 지금도 별로 나아진게 없다고 생각된다. 신망이 두터워야 리더십도 같은 방향의 일사불란한 빠른 실행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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