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601년 10월 24일은 튀게 오테센 브라헤라는 천문학자가 사망한 날이다. 덴마크 출신 천문학자이다. 망원경이 없는 시절 육안으로 별을 관측했고, 지동설과 천동설을 절충시킨 과도기적 천문학자였다. 그의 조수 중 한명이 요하네스 케플러이다.
즉, 그의 천문학 연구는 케플러에 영향을 미쳤고, 천문학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그야말로 ‘기행’ 그 자체였다. 오줌을 참느라고 방광염이 걸렸고, 결국 사망했기 때문이다.
뛰어난 시력 갖춘 인물
당시는 망원경이 없는 시절이었다. 그에게는 뛰어는 시력이 있었다. 그 뛰어난 시력을 통해 별을 관측했고, 천문학자로 대성을 하게 됐다.
브라헤는 ‘새로운 별’이 생겨나는 것을 관측하면서 하늘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당시 교회는 하늘은 영원불멸하다고 했지만 그것을 브라헤 천문학자는 깨부쉈다. 그리고 오늘날 그가 발견한 ‘새로운 별’은 초신성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증명하기 위해 육안으로 하늘을 관찰했고, 그렇게 해서 내놓은 이론이 바로 천동설과 지동설을 혼합한 이론이었다.
달과 태양은 지구 주의를 돌고, 다른 모든 행성은 태양 주위를 돈다는 혼합형 지동설이다. 물론 그의 조수인 케플러에 의해 깨졌지만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천문학자라는 평가다.
오줌 참느라고
그의 사망은 그야말로 기행이다. 한 귀족의 만찬에 초청됐는데 오줌이 마려웠지만 체면 때문에 참았고, 너무 참은 나머지 오줌을 쌀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면서 급성 방광염에 걸렸고, 11일 후 사망했다.
그의 사망을 애도하던 케플러는 브라헤의 관측자료를 손에 넣게 됐고, 케플러는 이를 바탕으로 천문학 연구를 하면서 오늘날 천문학의 아버지가 됐다. 만약 브라헤의 관측자료가 없었다면 케플러라는 걸출한 천문학자가 없었을 것이고, 천문학의 발전은 조금 더뎠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만큼 천문학계에서는 기행적인 인물이면서도 천문학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