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 “보잘것없는 재산보다 훌륭한 희망을 가지는 것이 더 소망스럽다”
- 세르반데스 -
어느 두 사람이 같은 교도소 한방에 있었다. 각자의 가진 생각과 꿈에 따라 두 사람의 미래는 크게 달라졌다. 한 사람은 창살을 뚫고 비치는 하늘의 햇살을 보며 희망을 꿈꾸고 내일을 향한 지혜를 가졌고, 다른 사람은 창살을 붙잡고 분노와 절망의 현실에 불평하면서 지냈다. 출옥한 후 두 사람의 삶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감사와 자연의 오묘함을 생각하던 사람은 지혜롭게 사업을 시작하여 부자가 되었지만, 절망을 꿈꾼 사람은 사회의 낙오자가 되어 비참한 삶을 살았다.
사람은 빵보다 희망을 먹고 사는 존재다. 꿈과 희망은 오직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특권이다. <25시>의 작가 루마니아의 게오르규는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라고 주문한다.
“25시는 모든 구원이 끝나버린 시간이라는 뜻이지. 최후의 시간에서 이미 한 시간이나 더 지나버린 절망의 시간, 지금 우리 사회가 처한 순간이 바로 25시야.” 누구보다도 한국을 사랑했던 그는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당신들은 다만 당신들 나라만이 아니라 세계가 잃어버린 영혼입니다. 왕자의 영혼을 지니고 사는 여러분들, 당신들이 창조한 것은 냉장고와 텔레비전과 자동차가 아니라 지상의 것을 극복하고 거기에 밝은 빛을 던지는 영원한 미소입니다.”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긍정적인 생각이 역사를 바꾼다. 역사상 안 된다는 생각이 이뤄놓은 일은 한 가지도 없다. 최악의 상황일수록 한 가닥 실낱같은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기적을 낳는다.
고통과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도 명작이 태어난다. '돈키호테'를 쓴 세르반테스는 매우 가난한 가정 형편으로 인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 23세 때 레판토 해전에 참전하여 상처를 입어 왼손에 장애도 가졌다. 28살 때는 터키 해적에게 납치당해 알제리에서 5년을 노예로 살았다. 그는 거듭되는 시련 속에서도 문학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고 꾸준히 소설을 썼다. 그는 58세 때인 1605년 감옥에서 수감된 동료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소설을 썼다. 그것이 큰 성공을 거두었고 불후의 명작이 되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희극이어도 결코 가볍지 않고 오히려 우리를 깊은 사고의 세계로 인도하며 묵직한 울림과 감동을 전해준다.
최후의 로마 철학자 보에티우스는 반역죄 선고를 받고 처형을 기다리는 동안 『철학의 위안』을 집필한다. 궁형의 치욕을 이겨낸 사마천은 죽을 때까지 14년간 역사서 《사기》완성한다.
어떠한 삶도 위대하지 않은 것이 없다. 위대한 삶은 슬픔 가운데 희망과 기쁨이 편집되기 때문이다. 나치 전복 음모를 꾀하다 감옥에 잡혔고 히틀러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3주 전에 세상을 마쳤던 독일의 양심인 본회퍼 목사는 3년간 참혹한 나치의 감옥 속에 있으면서 남긴 <옥중서간>에 이런 글을 남겼다.
“내가 고통을 당하는 것, 내가 매 맞는 것, 내가 죽는 것, 이것이 그리 심한 고통은 아니다. 나를 참으로 괴롭게 하는 것은 내가 감옥에서 고난을 당하고 있는 동안 ‘밖이 너무 조용하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