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 ‘친구’라는 단어를 들으시면 어떤 생각이 먼저 떠오르시나요?
장동건, 유오성 주연의 영화 친구가 떠오르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고 즐거웠던 유년 시절의 동무가 떠오르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아니면 최근 유명세를 타고 있는 드라마 글로리와 같은 원수보다 더 지독한 악연을 떠올리시는 분도 계시겠지요.
글로리라는 드라마를 아직 시청하지는 못했지만 주변에서 들려주시는 이야기를 귀동냥 많이 하다보니 어떠한 내용인지는 대충 감이 잡힙니다.
그러다 보니 지독한 악연이라는 과격한 표현을 쓰게 됐네요.(물론 드라마 시즌2 까지 연이어 나오는 것을 보면 지독한 악연이 맞았겠구나하고 스스로에게 농담을 던져봅니다.)
여러분들과 같이 저도 오랜 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들이 가끔 생각나기도 하고 어릴 적 친구의 철없는 괴롭힘에 맘고생 한 기억도 떠오르고, 그 친구는 이런 점이 참 좋았지. 저런 점은 참 나랑 안맞았어 하며 인생 다시보기 버튼을 누를 때도 많습니다. 아직까지도 별일 아닌 일로 서로 티격태격 하거나, 혹은 아웅다웅하는 친구들 사이를 구경할 때도 있구요.
국어사전에서 친구라는 단어의 의미를 찾아보니 이렇습니다.
친구, 親舊
1. 오랫동안 가깝게 사귀어 온 사람. 주로 서로 나이가 비슷한 경우에 쓰이는 말.
2. 나이가 비슷하거나 아래인 사람을 낮추거나 무간하게 이르는 말.
국어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친구는 막역한 관계를 나타내는 첫번째 의미로서의 용도와 비슷한 또래나 아래 사람을 그냥 지칭하는 의미로서의 용도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보통은 친구라는 단어를 들으면 대부분의 여러분은 아마도 막역한 관계를 나타내는 첫번째 의미가 가슴에 와닿으실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만큼 친구라는 개념이 우리들의 삶에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 달 전 쯤인가요? 결산 업무로 정신이 없을 때 잠시 천천히 쉬어가자는 의도에서 잠깐 펼쳤던 책에서 봤었는지 아니면 인터넷에서 지나치듯이 보았던 글귀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습니다만, 아래의 글귀 혹은 명언이 머리속에 맴돈 적이 있었습니다.
“사람에게는 나이에 맞게 어울려야 하는 세가지의 친구 부류가 있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죽은 사람들과 친구를 하여야 하며, 젊을 적에는 산 사람들과 친구를 하여야 하고, 죽어서는 자기 자신과 친해져야 합니다”
정확히 모든 구절을 기억하고 있지는 않은 터지만 이러한 의미의 내용이었습니다. 바쁜 업무가 어느 정도 정리되고 그 글의 출처를 사방팔방 나름 애써서 찾아보았지만 아직도 찾지 못하였네요. 추측컨데 붓다의 말씀이셨거나, 쇼펜하우어 아님 발타자르 그라시안? 그것도 아니면 니체? 어찌 되었던 구글링을 통해서도 아직 찾지 못하였습니다. 혹시 open AI의 챗GPT한테 물어보면 알려주지 모르겠습니다.
아! 생각난 김에 바로 챗GPT에 물어 보겠습니다.
....
.....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오네요.
질문(나) : “사람에게는 나이에 맞게 어울려야 하는 세가지의 친구 부류가 있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죽은 사람들과 친구를 하여야 하며, 젊을 적에는 산 사람들과 친구를 하여야 하고, 죽어서는 자기 자신과 친해져야 합니다.” 와 비슷한 명언의 출처를 알려주세요.
답변(챗GPT) : 이 명언은 미국의 작가, 에리카 종(Erica Jong)의 말입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에는 죽은 이들과, 젊은 시절에는 산 이들과, 그리고 노년에는 자기 자신과 친구를 맺어야 한다" 라는 비슷한 문장을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다행히도 근 몇주일간 고민하였던 문제를 챗GPT가 해결해 주어서 매우 기쁜 마음입니다. 사실 이 금언의 출처를 알아내고 싶었던 이유는 이 글의 의도가 정확히 어떠한 것이었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에리카 종 작가님의 의도는 차근 차근 알아볼 예정이나 먼저 제 마음이 이 금언에 내리꽂힌 연유 혹은 저의 해석을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
첫번째, '어린 시절에는 죽은 이들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어린 시절에는 책들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우리는 제한된 환경에서 제한된 경험으로 자라나지요. 당연히 안전이 제일 중요한 시절이라 제한된 환경과 경험은 필연적일 겁니다.
이러한 유년기, 청소년기의 제약사항을 벗어나게 도와주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가 주로 죽은 사람들의 지식인 책이겠지요. 물론 요즈음과 같은 인터넷 문명사회에서는 책 말고도 많은 정보의 유입이 가능한 채널들이 존재하나 아직도 깊이에 있어서는 책을 능가하는 지식의 보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압축되고 간략화된 정보는 마치 정보를 소비하고 배설하는 것과 같다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중요한 지식은 단순한 정보의 집합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이며, 문단과 문단, 글자와 글자 사이의 호흡에 스며 있는 분위기가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또한, 한 사람의 생각을 단순히 몇 문장, 몇 분의 설명으로 요약한다는 것이 얼마나 오만한 짓인지를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두번째, '젊은 시절에는 산 이들과 친구가 되어야 하고'의 의미는 젊은 시절에는 삶의 중앙에 두려움 없이 뛰어 들어가야 한다는 표현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준비해온 선대, 선세의 지식을 그냥 묵혀두는 것이 아닌 현실에서 부딪하고, 확인하고 나아가 더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산 이들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지인들과 계속 만나는 것을 넘어서 여행과 경험을 통해서 가능한 한 많은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함으로 써 자신의 세계를 확정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과의 관계나 지인들과의 관계 만으로는 자신의 한계를 부수고 나올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세번째, '노년에는 자기 자신과 친구를 맺어야 한다.'의 의미는 나이가 들면서 결국 의지할 곳이라고는 나 자신 밖에 없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변의 지인들과 가족들을 배척하라는 의미가 아님을 여러분들은 당연히 잘 아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타인과의 갈등도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만 정말 중요한 본질적인 사안은 살아오면서 겪어왔던 자신과의 갈등, 자신에 대한 무관심, 자신에 대한 감정적 학대 등을 회복해야 할 시점 아닐까라고 생각됩니다.
결국 모든 것은 자신의 문제이며, 자신의 행복을 넘어 타인과 행복을 향유하려면 먼저 자신이 보다 독립적이고 정신적으로 완전하며, 감정적으로 행복해져야 함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을 주장하고 싶습니다. 물론 모든 분들도 저와 같은 꿈을 꾸시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아직도 아득한 구름 너머의 경지일까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에리카 종 작가님의 친구와 관련된 이 금언을 접하고 지금 저에게 필요한 친구라는 존재는 어떠한 모습일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필요한 친구라는 존재가 동년배 일수도, 아니면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인생 선후배일 수도, 아니면 한 권의 책과 같은 사물일 수도 있겠습니다. 필요한 친구의 모습을 돌이켜 보는 것은 결국 제 자신이 지금 어떠한 모습이며 어떠한 방향을 가고자하는 인생의 목적을 돌이켜보는 것이 아닐런지요.
개인적으로 올해는 좀더 독립적이고 좀더 정신적으로 완전해지고자 명상앱 두개의 평생 회원권을 구입했습니다. 2월 중순까지는 나름 매일 빼먹지 않고 열심히 했는데 업무로 좀 바뻐지니 점차 명상을 하지 않는 날들이 늘어납니다. 무언가를 달성하고자 하면 초심이 제일 중요한데, 항상 초심을 잃어버립니다. 살아오는 내내 지겹게도요.... 방일하지 않고 정정진해야 함을 또 한번 다짐해야겠습니다.
다음에는 제가 유년기에 죽은 이들과 친구가 되었던, 저의 유년기의 책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 드릴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정훈 약력
前 삼정회계법인
외환/하나은행 근무
現 한국심장재단 감사
공인회계사
세무사
내부감사사
IFRS Mana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