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전투 경험 쌓아
성차별 넘어
전통적으로 우리 군에서 여군을 바라보는 시선이 보수적이었다. 이런 이유로 여군은 환경적인 제약이 상당히 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군은 성차별 요소를 뚫고 제 몫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성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1984년 당시 여군단장이었던 김현순 대령의 건의로 여성 부사관의 결혼이 허용됐다. 하지만 임신 및 출산은 허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1987년 들어 여군의 임신과 출산이 허용되면서 임부용 복장이 제정됐다. 기혼자의 여군 지원은 2007년이 돼야 해제가 됐다. 또한 성차별적인 요소가 발생하면 수많은 여군들이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제소를 하면서 해결을 해나갔다. 대표적인 것이 화장실 등을 포함한 생활 시설 개선 등에 대해 상당한 시간을 거치면서 여군의 문제 제기에 의해 점차 개선되기 시작했다. 여군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일도 있었다. 1958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실시되면서 육군에서도 1962년부터 미스 여군 선발대회가 실시된 것이다.두각 나타내는 그녀들
여군의 성차별 요소가 심했지만 여군들의 능력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2002년 여군 소위 20명이 처음으로 전방부대 소대장에 보직됐고 첫 여군 조종사가 배출됐다. 2003년에는 여군 장교가 처음으로 전투함에 승선했고, 여군 전투기 조종사 3명이 실전배치됐다. 2005년에는 여군 해상작전헬기 조종사가, 여군 창설 60주년인 2010년에는 대학교에 여성 학생군사교육단(ROTC)이 창설됐고, 전투병과에서 최초의 여성 장군이 탄생했다. 2014년 특전사 군가 가사는 40년 만에 ‘검은 베레모’의 가사 중 ‘사나이’ 부분을 ‘전사들’로 바뀌었다. 2015년 육군3사관학교가 여성 입교를 허용했고, 첫 여군 비행대장 2명이 탄생했다. 2017년 해군 역사상 처음으로 여군 함장과 여군 고속정 편대장이 탄생했으며 2019년 최초 여군 소장과 해상초계기(P-3) 교관 조종사, 해상기동헬기(UH-60) 정조종사가 탄생했다. 2020년에는 최초 여군 상륙함장과 해병대 첫 여군 헬기 조종사가 탄생했다. 여군은 이처럼 조국의 위기와 함께 했고, 조국의 역사와 함께 걸었며, 조국의 미래와 함께 할 것이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