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까지 밀려난 국군
군산 아닌 인천 선택한 이유
원래 인천상륙작전이 아니라 ‘군산’상륙작전이었다. 그 이유는 인천은 조수간만의 차가 너무 컸고, 넓고 긴 갯벌이었으며, 높은 해벽이 있었고, 항구 인근에 인천이라는 대도시가 있으면서 시가전이 쉽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인천보다는 오히려 군산을 상륙작전의 최적지로 선정을 했다. 다만 인천 이외에는 답이 없었던 것도 현실이다. 군산은 상륙은 양호했지만 상륙해도 북한군의 보급선을 절단히자 못하고, 적 병력을 포위하지 못했다. 차라리 낙동강 방어선에 병력을 증원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북한군의 보급로를 완벽하게 절단하기 위해서는 인천 이외에는 답이 없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서울을 수복한다는 상징적인 면도 있었기 때문에 맥아더 장군은 인천상륙작전을 결행하기로 한 것이다.인천상륙작전 결행하면서 낙동강도
인천상륙작전이 이날과 그 다음날 이틀에 걸쳐 결행하면서 낙동강 전선도 대대적인 반격 작전에 나섰다. 특히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이 낙동강 전선에 있는 북한군에게 알려지자 북한군은 붕괴되고 말았다. 육상교통의 중심지이면서 물자가 가장 풍부한 서울이 유엔군에게 점령당했다는 것은 북한군으로서는 상당한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보급품을 확보하는 것이다. 북한군은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보급로가 절단나면서 그때부터 사기가 꺾일 수밖에 없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경상도를 침공하고, 한양을 거쳐 평양까지 북상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진격을 하지 못했던 것도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해군이 한산도 대첩 등에서 계속해서 승리하면서 보급로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은 낙동강 전선에 투입된 북한군에게 더 이상 보급이 원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게 됨으로써 북한군이 붕괴되게 만들었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