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 지방 사투리로 진행된 수도원 내 도슨트 프로그램
- 걷기만 해도 완주증을 받을 수 있는 짧은 순례길, 사리아
- 순례길에서 만난 축제의 현장, 정열적인 스페인의 밤 즐겨
[파이낸셜리뷰=양시영 인플루언서] 29일 차 순례는 근사한 풍경과 함께 하산으로 시작했다. 산자락에 위치한 폰프리아(Fonfria)에서 출발한 덕분에 발아래 깔린 구름을 실컷 감상하며 걸었고, 마치 천국을 누비는 것 같은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오랜 역사와 독특한 건축 양식의 사모스 수도원 방문
이날 나는 사모스(Samos)라는 마을까지 걸었지만, 대부분 순례자는 조금 더 걸어 사리아(Sarria)로 직행하곤 한다. 내가 사모스까지만 걸은 이유는 꽤 간단했다. 엄청난 규모와 역사를 자랑하는 사모스 수도원을 여유롭게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수도원 내 도슨트 프로그램도 있다는 소식에 함께 참여하고 싶었지만, 영어가 아닌 스페인어, 심지어 스페인 지방 사투리로 진행된다는 얘기를 듣고 빠르게 참여 의사를 접기도 했다. 하지만 수도원 자체가 워낙 성대하고 건축 양식도 독특해서 산책하듯 둘러보기만 해도 그 숭고한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내가 걸을 당시, 사모스에는 세 숙박업소가 있었다.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공립 알베르게, 사설 알베르게, 그리고 호텔도 단 한 곳뿐이었다. 마을에 도착하기 전, 어디서 묵을지 고민하던 중, 이곳의 알베르게들이 너무 열악해 베드버그가 수시로 나온다는 여러 후기 글을 보게 되었다.
베드버그란 우리나라의 ‘빈대’와 같은 벌레인데 한번 물리면 2주간 극심한 간지러움에 고생하는 것은 물론, 쉽게 죽지도 않아 배낭과 침낭, 모든 짐을 고온에 삶아야지 박멸할 수 있다고 들었다. 내가 순례길에서 단 하나 피하고 싶은 것이 바로 베드버그였기에, 일반 알베르게에 묵는 것이 너무나 걱정되었다.
그러다 딱 하나 있는 호텔에 가격을 문의하니 1박에 25유로, 아주 저렴한 금액에 1인실을 제공하고 있었다. 평균적으로 순례길에서 개인실에 묵으려면 40유로는 지불해야 했기에, 여러모로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사모스에 도착해 체크인을 마쳤고,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여유롭게 휴식을 취했다.
새로운 순례자들로 북적이는 사리아에 도착하다
다음 날은 세계 각국 순례자가 새로이 모여드는 곳, 사리아로 향하는 날이다. 사리아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100km 정도 남은 곳이며, 이곳에서부터 걷기만 해도 완주증을 받을 수 있어 짧게나마 순례길을 경험하고 싶은 이들로 가득한 곳이다. 그래서 보통 사리아에서부터 숙소 대란이 시작되는데, 더욱이 내가 도착하는 날부터 지역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에 나는 곧바로 알베르게 한 곳을 미리 예약하기도 했다.
사리아에 도착 후, 함께 걷는 순례자 친구와 밥을 먹으며 예산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계산해 보니 나는 하루 평균 40유로, 그 친구는 70유로 정도 쓰고 있었다. 덧붙여 그 친구는 본인이 1인실에 꽤 자주 묵고, 식사량이 많은 터라 지출이 다소 높은 편이라고 했다.
코로나 이후 물가가 오르면서 순례길 경비도 많이 오른 것 또한 사실이다. 나는 먹는 양이 그렇게 많지 않아 하루 40유로면 충분했지만, 평균적으로는 50유로, 식사량 및 외식 횟수에 따라 그 이상도 들 수 있다. 그러니 순례를 앞둔 예비 순례객이라면 본인의 의식주 습관을 고려해 예산을 효율적으로 짜보는 것을 추천한다.
카미노 지역 축제의 참맛을 알려준 사리아
저녁은 사리아 번화가에 위치한 레스토랑으로 갔다. 오늘의 메뉴라는 뜻의 ‘메뉴 델 디아’를 주문해 먹고 있는데, 멀리서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악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기자기한 퍼레이드와 개회사를 시작으로, 스페인 전통 의상을 입은 어린이와 시민들이 손을 맞잡고 춤을 췄고, 많은 사람이 거리에 나와 함께 즐겼다.
해가 지니 여기저기서 폭죽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간단히 맥주를 마시던 나와 일행은 바로 달려 나와 폭죽 소리를 따라 걸었고, 흡사 우리나라의 ‘쥐불놀이’와 같은 작은 불꽃놀이를 발견했다. 이후 스페인 가수의 라이브 공연까지 이어지며 그 열기는 점점 뜨거워졌다.
해외에서 이런 화려한 지역 축제를 보는 것도, 즐기는 것도 처음이었기에, 나는 이 축제에 완전히 녹아 들어 보기로 했다. 순례자들과 술잔을 기울이기도, 스페인 가요에 맞춰 몸을 흔들기도 하며 정열적인 스페인의 밤을 즐겼다.
순례길을 작은 버전의 삶과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걸으면서 웃기도. 울기도, 스스로에 분개하기도, 내일이 없을 것처럼 즐기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단 5일밖에 남지 않은 지금, 나는 이 길이 주는 모든 희로애락을 후회 없이 경험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