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차세계로의 산티아고 순례길 08] 레온으로 향하는 19km 거리, 만만하게 봤다가 결국… 순례길 역주행
[차차세계로의 산티아고 순례길 08] 레온으로 향하는 19km 거리, 만만하게 봤다가 결국… 순례길 역주행
  • 양시영 인플루언서
  • 승인 2023.10.04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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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km 행군에서 19km로 줄어드니 느슨해진 마음 들어
- 레온에서 즐긴 와인과 하몽 파티, 카페에서 편지 쓰는 여유까지
- 물리적 통증과 누적된 피로로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되는 중반부
밤에 바라본 레온 대성당. /사진=양시영 인플루언서
밤에 바라본 레온 대성당. /사진=양시영 인플루언서

[파이낸셜리뷰=양시영 인플루언서] 오늘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나는 세 번째 대도시, 레온(Leon)으로 향하는 날이다. 전날 만시아(Masilla de Las Mulas)에서 순례길과 5km 정도 떨어진 숙소에 묵었기 때문에, 호스트가 제공해 준 차량 서비스를 이용한 뒤, 다시 순례길에 올랐다.

레온으로 향하는 순례길 위 풍경. /사진=양시영 인플루언서
레온으로 향하는 순례길 위 풍경. /사진=양시영 인플루언서
레온이 가까워져 신난 모습을 하고 있다. /사진=양시영 인플루언서
레온이 가까워져 신난 모습을 하고 있다. /사진=양시영 인플루언서

만시아에서 레온까지의 거리는 약 19km다. 요 며칠 30km 이상을 걸었더니 19km는 매우 만만하게 느껴져 조금은 긴장을 풀고 걷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방심한 채 연신 직진만 하던 나는 순례길을 역주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생장(프랑스 길의 시작점)으로 다시 갈 뻔했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도록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소중한 한 걸음, 한 걸음을 떼며 오늘의 목적지인 레온으로 향했다.

소박하고 소중한 추억이 많았던 레온에서의 시간

레온에 도착한 뒤, 짐을 풀고 간단히 점심을 먹는데, 이제껏 길에서 만났던 순례자들로부터 하나둘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레온 왔어? 도착했으면 밥이나 먹자!’ 오랜만에 도시에 와서 신난 순례자 친구들을 보니 한편으론 귀엽기도 했고, 내게 연락을 준 데에 고맙기도 했다.

멀리서 보이는 레온 도시 전경. /사진=양시영 인플루언서
멀리서 보이는 레온 도시 전경. /사진=양시영 인플루언서
스테이크 대신 실수로 시킨 하몽 플레이트. /사진=양시영 인플루언서
스테이크 대신 실수로 시킨 하몽 플레이트. /사진=양시영 인플루언서

저녁으로는 제대로 된 레스토랑에서 고기를 썰어보자 싶어, 순례자 1호 님과 오랜만에 만나 스테이크 맛집을 찾아갔다. 우리는 앉자마자 스페인어로 쓰인 소고기 요리를 주문했는데, 대형 하몽 플레이트 두 개가 나와버렸다. 엄청난 양의 하몽에 식겁했지만, 이것도 하나의 추억이라 여기며 와인 한 병을 시켜 짜디짠 저녁을 즐겼다.

다음 날엔 느지막이 일어나 레온 시내를 구석구석 구경했다. 대성당 기념품 가게에서 엽서 몇 장을 산 뒤, 카페에 앉아 소중한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며 여유를 즐기기도 했다. 그러다 미사 시간에 맞춰 레온 성당에 가 미사를 드렸고, 함께 걷는 순례자들 모두 무탈하게 끝까지 완주하길 바란다는 기도도 드리며 레온에서의 시간을 마무리했다.

레온 시내 골목골목을 구경하며. /사진=양시영 인플루언서
레온 시내 골목골목을 구경하며. /사진=양시영 인플루언서
레온 대성당을 바라보며 여유를 즐기던 중. /사진=양시영 인플루언서
레온 대성당을 바라보며 여유를 즐기던 중. /사진=양시영 인플루언서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추억을 잔뜩 만들어서였을까? 왠지 모르게 레온을 떠나기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앞으로 마주할 새로운 여정과 경험, 인연들에 또 다른 기대를 품은 채, 그렇게 다음 날 아침, 나는 산마르틴 델 카미노(San Martin del Camino)로 향했다.

내가 순례길을 다시 오게 된 진짜 이유

한참을 걷다 보니, 한 한국인 중년 남성분과 함께 걷게 되었다. 그분은 30일 이내에 순례길을 완주하는 것을 목표로, 항공편도 미리 맞춰서 예약했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 일정을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걷다 보니 결국 발목에 탈이 났고, ‘내가 왜 이 고생을 사서 하나’ 싶은 부정적인 마음도 많이 들었다고 하셨다. 나는 그분께 작은 위로라도 해드리고 싶어, 이렇게 말씀드렸다.

산마르틴을 향하는 순례길 위에서. /사진=양시영 인플루언서
산마르틴을 향하는 순례길 위에서. /사진=양시영 인플루언서

“저는 이번이 두 번째 순례길인데, 저도 첫 순례 때는 너무 힘들어했어요. 그럼에도 이렇게 다시 온 이유는 순례길을 걸으며 느꼈던 원초적인 감각, 날것의 감정들이 너무 그립더라고요. 일상에 복귀하면 삶이 바쁘고 힘들어, 자신이 어떤 감정과 감각을 느끼는지 신경 쓰지 않잖아요. 그래서인지 돌아가서 순례길이 아주 그리웠어요. 지금은 많이 힘드시겠지만, 오히려 이 시간을 즐겨 보세요!”

나의 이야기를 듣고, 그분께선 생각 전환이 많이 됐다며, 정말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오히려 나야말로 그분께 감사했다. 한국에서 항상 순례길을 다시 걷고 싶다며 떠들고 다녔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 기회로 내가 순례길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재고하게 되었고, 이 길이 얼마나 내게 유의미한지 깨닫게 되었다.

20일 차가 넘어가니 슬슬 모든 순례자가 물리적 통증과 누적된 피로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감내해야 할 이 길에서 각자의 삶에 대해 깊게 고민하며, 그렇게 우리의 발자국은 더욱 짙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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