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박영주 기자] 한국전력 김동철 사장이 2024년 신년사에서 한 발언을 두고 ‘민영화를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일부의 지적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 한전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한전은 지난 4일 해명 설명자료를 통해 최근 일부 언론의 “김동철 한국전력 사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한전의 민영화’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는 보도를 적극 반박했다.
한전 측은 사장이 신년사에서 전 직원에게 강조한 것은 “‘공기업은 망하지 않는다’는 안일한 생각에서 벗어나 ‘주인의식’을 가져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으며, 나아가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에너지 공기업’으로 도약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올해 신년사에서 인용한 이탈리아 전력회사 Enel은 사업 다각화와 해외시장 진출을 통해 글로벌 에너지기업으로 성장한 사례로서 인용한 것이며, 민영화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덧붙였다.
한전 측은 “앞으로도 한전은 안정적 전력공급으로 국민들의 불편이 없도록 하고, 철저한 자구노력을 통한 조속한 경영정상화로 국민부담을 최소화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날 산업통상자원부도 보도자료를 통해 한전과 같은 맥락으로 한전 민영화에 대해 전면 부인하고 나섰다.
산업부는 “한전의 막대한 누적적자 등을 고려할 때 공기업으로서 한전의 최우선 책무는 경영위기를 타개하고 국민 부담을 줄이기 위한 자구노력의 철저한 이행”이라며 “정부는 한전의 경영쇄신 노력을 계속 독려해 나갈 방침”이라고 전했다.
[다음은 한전 김동철 사장의 신년사 전문이다]
국내외 한전 가족 여러분! 2024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청룡(靑龍)의 상서로운 기운을 받아 한전인 모두에게 좋은 소식이 많이 들려오길 기원합니다.
새해를 맞아 저는 지난해 9월 취임 이후 100여 일을 차분히 되돌아보았습니다. 취임 직후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회사에 24시간 머물며, 우리가 겪는 위기의 근본원인은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이 난관을 타개할 수 있을지 숙고했습니다.
국내외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직원들을 직접 만나면서, 우리 2만3000여 한전인 DNA에는 위기극복 저력이 살아있다는 사실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우리 회사는, 법정 사채발행한도를 초과할 뻔한 초유의 상황에서, 사상 최초의 자회사 중간배당을 실시해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긴박한 위기상황 속에서도 회사는 3.3조원 규모의 재정건전화계획을 이행했고, 최근 2년간 전기요금을 45.3원 인상하여 경영정상화의 계기도 마련했습니다. 고통분담 차원에서 임직원들이 임금반납에 동참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만으론 부족합니다. 지금의 위기가 너무나도 큰 데 반해, 그동안 우리는 공기업이라는 이유로 변화와 혁신을 계속 미뤄왔기 때문입니다.
공기업의 틀을 벗어나 사업영역을 다각화한 KT와 포스코, 국영기업에서 벗어나 국민기업으로 탈바꿈해 최근 10년 동안 매출액을 7배나 성장시킨 이탈리아 Enel처럼, 우리도 이제는 완전히 달라져야 합니다.
한전 가족 여러분,
에너지대전환 시대를 맞아, 2040년까지 글로벌 에너지 분야에 무려 12경원이 투자된다는 놀라운 전망이 있습니다. 이 막대한 규모는 2020년 전 세계 총 GDP에 육박하는 천문학적 수준입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기업 가치 1조원 이상의 유니콘기업으로 성장한 에너지 혁신기업이 전 세계적으로 약 80개나 있는데, IT 강국을 자처해온 우리 대한민국에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너무나 안타깝고 충격적입니다.
우리 모두 미래 준비에 소홀했던 과거를 뼈저리게 반성하고, 국내 전력생태계의 혁신과 성장을 이끌어갈 특단의 방안을 강구해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저는, 우리 한전을 ‘국가 미래 성장에 기여하는 글로벌 에너지기업’으로 분명히 선포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 네 가지를 실천해 나가겠습니다.
가장 먼저, 재무위기 극복에 총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재무위기 극복의 시작은, 지난해에 이어 재정건전화 계획과 추가대책들을 속도감 있게 이행해가는 것입니다. 자산매각, 사업조정, 비용절감, 수익확대 등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해 국민께 약속드린 재무개선 목표를 올해에도 반드시 달성해 나갑시다.
이와 함께 중요한 것은, 원가를 반영하는 합리적 전기요금 제도의 정착입니다. 올해 한전이 감당할 연간 이자 비용이 약 3.3조원이고 하루로 따지면 90억원이 될 것으로 예측되는 만큼, 요금조정은 꼭 필요하고 절실한 문제입니다. 이 사실을 국민께 계속 알리면서 반드시 요금정상화를 이뤄내야 하겠습니다.
둘째, 회사의 체질 혁신을 통해 경영전반의 경쟁력을 높이겠습니다.
기존 관행과 틀을 과감히 벗어나 위기극복과 미래준비 등 핵심 기능 위주로 조직과 인력을 계속 재편해 나가겠습니다. 성과와 역량 중심으로 인사제도와 보상체계를 혁신해 회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일도 시급합니다.
또한, 국가경쟁력의 핵심이자 한전 본연의 책무인 전력망 적기건설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전력계통 혁신대책을 계기로, 전력망 건설 패러다임을 더욱 효율적으로 바꿔가고 주민수용성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하겠습니다.
셋째, 사업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통해 전기요금 이외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겠습니다.
지난 취임사에서 저는, 한전이 에너지 신산업과 신기술의 생태계를 주도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세계가 인정한 원전 적기건설 능력을 자산으로 원전 수출 무대를 계속 넓혀가자고 강조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실행이 중요합니다. 회사는 발전부터 판매까지의 가치사슬별 중장기 로드맵을 세워 IT기반 에너지 신기술의 사업화를 본격 추진할 계획입니다. 또한 금년에 바라카원전 4호기까지 모두 상업운전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해외 송변전, 배전, 신재생 분야에서도 새로운 수익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넷째, 자율과 책임경영에 기반한 국민기업으로 변신해야 합니다.
공기업이란 지위가 오히려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 건 아닌지, ‘공기업은 망하지 않는다’는 안일한 생각 때문에, 여기까지 내몰린 건 아닌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또한 독점사업자라는 독점적 지위 때문에 역설적으로 모든 책임과 부담을 다 짊어지는 건 아닌지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회사는 창의력과 효율성이 극대화될 수 있도록, 자율경영과 책임경영을 바탕으로 전력그룹사 거버넌스를 재설계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공기업 체제의 새로운 대안인 ‘국민기업’으로 거듭나, 전력산업의 안정성과 공공성을 계속 지켜가면서, 글로벌 무대에서 당당한 경쟁력을 갖춰야 합니다.
한전 가족 여러분, 이 모든 과제들을 실천하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엇이겠습니까?
공기업 마인드를 버리고 주인의식으로 무장하는 것입니다. 시키는 일, 주어진 일만 하는 사람은 주인이 아닙니다. 주인은 회사가 필요로 하는 일을 스스로 찾아서 수행해내는 사람입니다.
법과 제도를 핑계로 삼아, 기존의 틀 안에만 머물러서도 안 됩니다. 에너지 분야 최고의 경험과 역량을 가진 우리가, 논리와 전문성을 바탕으로 정부와 국회를 끈질기게 설득해 나간다면, 불합리한 법과 제도를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최근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4년 연속 미흡 등급을 받은 사실을 국민의 엄중한 경고로 받아들여 환골탈태해야 합니다. 고객이 몇 번씩 찾아오게 하지 말고, 우리가 먼저 고객을 찾아가 어떤 불편과 불만이 있는지 살펴보면서 근본부터 개선해가야 하겠습니다.
앞으로 회사는 한전의 주인인 직원 여러분이 회사의 중요한 소식을 가장 먼저 알 수 있게 하고, 저 또한 직원 여러분과 편안하게 만나는 허심탄회한 자리를 지속적으로 만들어가겠습니다.
이뿐 아니라 노사간 신뢰와 협력도 중요합니다. 눈앞의 이 위기를 어떻게 함께 극복할지, 회사의 미래가치를 어떻게 창출해나갈지가 노사 공동의 최우선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안전을 지키는 일에는 모두가 함께해 주십시오. 회사가 아무리 어려워도, 안전은 결코 양보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최고의 가치라는 사실을 한전인 모두가 가슴에 새겨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한전 가족 여러분,
위기의 시간은 어둡고 길지만, 기회 또한 반드시 찾아옵니다. 하지만 어느 한순간, 한두 사람의 힘만으로 위기가 기회로 바뀌지는 않습니다. 기회의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노력과 집단지성이 필요합니다.
위기가 중요한 이유는 도구를 바꿔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듯이, 새로운 의지와 각오로 철저히 무장해 ‘국가 미래 성장에 기여하는 글로벌 에너지기업’을 다함께 만들어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