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겼나? 해석은 분분…결국 소비자와 양사 모두 위한 ‘윈윈전략’
[파이낸셜리뷰=박영주 기자] 공룡들의 전쟁. 이른바 ‘햇반전쟁’으로도 불렸던 쿠팡과 CJ제일제당의 갈등이 종지부를 찍었다.
추석명절 대목을 앞두고 CJ제일제당이 약 1년8개월 만에 쿠팡과의 직거래를 재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로써 소비자들은 로켓배송을 통해 스팸‧비비고만두‧햇반 등의 제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됐다.
CJ제일제당으로서는 쿠팡과의 거래중단 이후 네이버쇼핑‧배달의민족‧SSG닷컴에 중국 이커머스 ‘알리’까지 판매처를 다변화했지만 쿠팡 고객층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쿠팡으로서도 중국발 이커머스 공세가 거센 상황에서 막강한 제품력을 자랑하는 브랜드와의 협업이 절실했다.
쿠팡의 승리라 봐야할지, 아니면 CJ제일제당의 승리로 봐야할지 해석은 분분하지만 파워게임을 이어오던 양측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윈윈(win-win)전략을 택하면서 소비자와 업체 모두가 이득을 볼수 있는 길이 열렸다.
쿠팡 vs CJ제일제당, 왜 싸웠더라?
쿠팡과 CJ제일제당 간 갈등이 공식화 된 것은 1년8개월 전인 지난 2022년 11월이었다. 양측이 2023년도 납품단가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쿠팡이 CJ제일제당의 햇반‧비비고만두 등의 상품 발주를 중단했다.
양측의 의견은 팽팽하게 엇갈렸다. 쿠팡은 “CJ제일제당이 납품가를 계속 올리면서 발주물량을 제대로 공급하지 않는 등 계약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CJ제일제당은 “쿠팡이 감내하기 어려운 정도로 과도한 마진율을 요구했다”고 맞받아쳤다. 결국 같은해 12월 쿠팡이 CJ제일제당의 인기상품들에 대한 발주를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쿠팡은 이커머스 업계에서 최강자, CJ제일제당은 식품업계 1위 기업이었던 만큼 이들의 기싸움은 유통업계 내에서 ‘공룡들의 전쟁’으로 불리며 커다란 화제를 모았다.
당시 업계에서는 양사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큰손’이기 때문에 갈등이 장기화되진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주를 이뤘지만, 이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2023년 초까지만 해도 “협의점을 찾고 있다”던 입장이었던 양사는 2분기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인 결별행보를 밟았다. 화해 대신에 ‘각자도생’을 택한 것이다.
각자도생이 남긴 ‘빛과 그림자’
CJ제일제당과 쿠팡이 갈라서면서 더이상 로켓배송으로 햇반이나 비비고만두를 구입할 수 없게 되자, 소비자들은 혼란스러워 했다. CJ제일제당과 쿠팡도 일시적으로 수익성이 감소하는 등 손해를 봤다. 하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양사는 ‘각자의 길’을 찾게 됐다.
CJ제일제당은 ‘판매처 다변화’에 나섰다. 자사몰 강화를 시작으로 경쟁사들과 반(反)쿠팡 연대를 꾸렸다. 마켓컬리와 신세계 유통3사인 이마트‧G마켓‧SSG닷컴, 11번가, 배달의민족을 넘어 올해 3월에는 중국 이커머스 ‘알리’와도 손을 잡았다. 네이버쇼핑, 카카오톡 선물하기 등에도 입점을 가속화했다.
쿠팡은 ‘제품 다변화’를 꾀했다. 햇반이 사라진 빈자리는 중견‧중소기업들의 제품과 쿠팡 PB상품 등이 채웠다. 오뚜기의 ‘오뚜기밥’, 하림의 ‘The미식’ 등을 필두로 유피씨, 시아스, 참미푸드, 티엘푸드, 미트리 등의 소규모 기업들의 매출이 수직상승했고 비비고 만두‧김치의 빈자리 역시도 다른 기업들의 상품들이 빠르게 채워나갔다.
쿠팡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던 플랫폼 업체들로서는 CJ제일제당 상품을 사려는 소비자들 덕분에 판매량이 늘어나면서 실적이 개선이 포착됐고, 쿠팡 내에 입점해있었지만 햇반‧비비고만두에 밀리던 경쟁 제품들은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았다. 일반 소비자들로서도 보다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하지만 이러한 각자도생 행보에 부정적 목소리를 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일례로 올해초 CJ제일제당이 ‘알리’와 손을 잡았을 때 중국 이커머스에 대한 반감이 큰 소비자들은 “아무리 쿠팡이 싫어도 그렇지 어떻게 알리와 손을 잡나” 등의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쿠팡 역시도 납품업체들을 상대로 갑질을 일삼는다는 여론의 질타로 몸살을 앓아야 했다. 실제로 쿠팡은 알고리즘 조작 등을 이유로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철퇴를 맞기도 했다.
CJ제일제당‧쿠팡, 둘 중에 승자는 누구?
CJ제일제당과 쿠팡의 갈등 이후, 최종적으로 누가 승자인지에 대해서는 시점‧기간 등의 기준에 따라 해석이 갈린다.
쿠팡의 경우, CJ제일제당과 결별한 직후인 지난해 1분기 식품 부문 매출이 전년대비 20% 이상 증가한 7조3990억원을 달성했다고 밝혔으며, CJ제일제당이 빠지면서 무수한 후발 중소-중견 식품업체들이 전례 없는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확보했다고 전한 바 있다.
쿠팡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5월 사이 중소기업 ‘유피씨’의 매출은 전년동기 대비 1만410% 올랐고, ‘시아스’는 7270%, ‘참미푸드’는 1080%, ‘티엘푸드’는 290%, ‘미트리’는 170% 등으로 상승했다. 하림의 즉석밥 매출은 무려 4760% 올랐고 오뚜기는 80% 성장했다. 특히 쿠팡에서 오뚜기의 즉석밥 판매량은 CJ제일제당을 넘어서며 폭발적 성장을 이어갔다.
CJ제일제당도 이에 질세라 ‘우리도 상황은 나쁘지 않다’는 근거자료들을 제시했다.
지난해 햇반의 국내외 매출이 전년대비 4.3% 증가한 8503억원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치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국내 오프라인 시장 점유율은 닐슨코리아 기준 68%로, 전년대비 1.8%p 상승하며 최근 3년새 가장 높았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자사 온라인몰을 통한 매출도 전년대비 79% 늘었으며, 네이버에서의 햇반 거래액은 전년대비 3배 늘었고, 마켓컬리 등에서도 완판행렬이 이어졌다고 전했다.
물론 코로나19 팬데믹이 있었던 2020년(15.2%), 2021년(23%), 2022년(18.5%)과 비교하면 햇반의 매출 증가율이 4.3%에 그쳐 성장세가 다소 주춤한 모습이 엿보였지만, 판매처 다변화로 쿠팡의 공백을 메꿔가고 있다는 것이 CJ제일제당 측 입장이었다.
핵심은 ‘윈윈전략’…기업도 소비자도 좋은 방향으로
1년8개월 만에 다시금 손을 잡은 쿠팡과 CJ제일제당은 전국적인 로켓배송 물류 인프라와 CJ제일제당의 인기상품을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내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특히 추석명절을 한달 정도 앞두고 스팸류 선물세트와 비비고만두 등 냉동식품 수요가 급증하는 만큼, 기존에 다방면으로 확대한 판매처 외에도 쿠팡을 통해 보다 많은 소비층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CJ제일제당의 전략일 수 있다.
쿠팡도 알리·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 경쟁자들의 공세가 갈수록 거세지며 지난 1분기 당기 순손실 318억원을 기록하는 등 실적에 적신호가 켜지자, 탄탄한 제품력을 자랑하는 납품업체와의 공조가 불가피해졌다. 알리·테무가 상품 라인업을 신선식품과 가공식품으로까지 확대하는 상황도 견제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쿠팡의 로켓배송을 통해 CJ제일제당의 제품을 빠르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
유통업계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날이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양측이 모두 살아남으려면 끈끈한 파트너십이 필요하다. CJ제일제당과 쿠팡 역시도 과거 서로에게 꼭 필요한 파트너였던 만큼 어려운 대외상황에서 굳이 기싸움을 이어갈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