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이주하 사진작가] 고구려 역사의 흔적은 대부분 중국과 북한에 남아 있어 쉽게 찾아볼 수 없습니다.
고구려가 압록강과 요하, 대동강 일대를 주된 활동무대로 삼았던 까닭에 한강 이남에는 큰 규모의 유적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나라에 몇 개의 유적이 있고, 몇 군데에 고구려 역사의 한 부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가운에 눈에 띄는 것이 아차산 성, 중원고구려비, 연천군에 남아있는 3군데의 산성과 야사로 전해오는 온달산성이 있습니다.
호로고루는 3산성 중에 성의 규모나 크기와 규모로는 으뜸이며 호로고루는 상류에 위치하여 배를 타지 않고 임진강을 건널 수 있는 곳이어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에 해입니다.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에 위치하는 고구려 보루. 사적 제467호. 5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얼핏 생소하게 들리는 '호로'라는 명칭은 보루를 에워싸 흐르는 임진강의 옛 이름인 '호로하(瓠瀘河)'에서 따온 것으로, 호로하에 있는 오래된 보루라는 뜻으로 호로고루라고 불리게 되었답니다.
또한 이 성에서는 발굴 작업 시 기와와 토기. 석기, 철기류가 출토 되었는데 다른 두성과 달리 고구려 유물이 많이 발굴이 되었답니다. 이처럼 남한에 있는 몇 개 남지 않은 고구려성이 어찌된 영문인지 문화재청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어 제대로 관리가 제대로 안되고 있다는 느낌을 갈때마다 받고 있습니다.
특히 연천군은 인구가 41000여명뿐이고 주업종이 농사와 철원과 연곡과 연계된 주상절리의 관광으로 간신히 유지하는 재정 빈약에 허덕이는 연천군이 관리를 담당 합니다.
사실 어는 곳을 가 보아도 군 단위 관리로 문화재 관리가 잘 이루어지기는 어려운 형편입니다. 매년 방문해서 보아도 조금씩 예산이 투입되어 무언가를 고치고 보수를 하나 제대로 된 유지 관리는 안되는 상태입니다.
자치적으로 인근 주민들에게 관리를 맡기기도 하지만 언덕만 있는 콘텐츠에 다녀가는 관광객이 그들의 농산물과 특산물에 지갑을 열리는 없습니다.
2번째로 큰 당포성은 현재 전곡읍의 서북쪽 임진강 북안과 그 지류에 형성된 천연 절벽을 이용하여 축조한 평지성으로, 서쪽 부분이 뾰족한 모양인 삼각형 형태로 이러한 구조 때문에 가로막아 쌓은 동쪽 성벽은 매우 높게 구축되어 있으며 단애지대를 따라 구축된 남 · 북 성벽은 낮게 축조되었답니다.
성의 전체적인 형태가 주변에 위치한 은대리성이나 호로고루와 매우 흡사하며 특히 축조방식은 호로고루와 매우 유사합니다.
서쪽 끝에서 동벽까지의 길이가 200m이며, 동벽의 길이는 50m, 전체둘레는 약 450m정도로, 현재 잔존 성벽은 동벽 6m, 단면 기저부 39m정도이며 성내부로의 출입 때문에 동벽의 남단은 성벽이 일부 파괴되어 출입로가 만들어졌고, 북단의 경우에는 안타깝게 참호 건설로 인하여 파괴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서울에서 가기에는 다소 먼 당포성(서울기준 최북단)은 성아래에 군사 진지가 설치되어 있어 문화재를 보호하는 것인지 방치하는 것인지 도대체 이해가 안 갔습니다. 가을 입구에 열리는 당포성 별빛축제는 제법 많은 방문객이 오고 있었으나 성 앞에는 성을 누워 볼 수 있도록 잔디에 소파를 설치해 연인들이 껴안고 애무하는 장소로 변하고 있어 축제를 개최하는 연천군의 문화재 관리 능력이 수준이 이하임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연천에 있는 마지막 은대리성은 호로고루, 당포성과 함께 임진강과 한탄강이 지류와 만나 형성하는 삼각형의 대지위에 조성된 독특한 강안평지성(江岸平地城)으로 임진강이 국경하천역할을 했던 삼국시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학술적으로 가치가 높은 귀중한 문화유적이라고 국가 유적 포털에서 적혀 있지만 지방의 작은 병원 주차장 뒤편에 위치하고 있고 이부는 영안실 쪽으로 들어 가야 볼 수가 있습니다..
은대리성 뒤편에는 풀을 깎아 놓은 넓은 잔디밭에는 이곳에서 골프 연습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골프 금지 안내가 붙어 있음에도 이곳은 돈 안내는 골프 연습장이 되어 갑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몇 안되는 고구려성은 문화재관리청의 관심 부족과 지방문화재 관리능력이 수준 이하인 연천군의 관리로 무너져 가고 점차 망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지역이 북한과 가까운 지역이므로 군의 입김이 강하겠지만 관할 군부대의 문화재를 바라보는 수준 이하의 능력은 주요 문화재인 당포성에 군진지를 만드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짓을 저질러도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나 봅니다
동구릉을 비롯한 서울 외곽의 능안에는 군진지를 설치하자는 군의 강력한 주장에도 그 당시 이곳을 담당하던 공무원의 강력 제지로 서울 외곽의 임금이나 왕비들의 릉 안에는 군 진지가 단 한개도 설치되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는 연천군의 공무원의 역할을 다시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