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병훈 칼럼] 푸틴의 오판 - 강요된 침묵의 끝자락
[백병훈 칼럼] 푸틴의 오판 - 강요된 침묵의 끝자락
  • 백병훈
  • 승인 2022.10.04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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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 우크라이나 전쟁이 새로운 변곡점(變曲點)을 맞고 있다.

우크라 침공 후 궁지에 몰린 푸틴이 2차대전 후 처음으로 예비병력 동원령을 내렸다. 우크라 돈바스 지역을 엉터리 주민투표로 병합시켜 버렸다. 그 후폭풍은 러시아 전역에서 반전(反戰)시위를 불러왔다. 징집대상자와 가족들은 인접국으로 탈출하는 대열에 올랐고, 영토병합에 반대하는 돈바스 주민들은 목숨을 건 탈출을 선택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시 선출직 정치인들은 우크라 전쟁을 반역죄로 규정하고 러시아 하원에 푸틴의 탄핵을 요구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푸틴의 고향이다.

푸틴에게 뜻밖의 이런 상황이“찾잔 속의 폭풍”이 될지, 바다를 집어 삼키는 격렬한 폭풍이 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변곡점에 다다른 이런 전황(戰況)의 초래는 어디서부터 왔을까? 우크라 전쟁에서 푸틴은 두 가지 측면 모두를 놓쳤다.

첫째 측면은 푸틴의 “정치군사관”이다.

푸틴은 전장의 야전군이나 군사전문가 출신이 아니다. 옛 소련연방 시절 정보장교를 거쳐 옐친 대통령 행정부에 발을 들여 놓았다. 옐친이 물러나자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고 곧바로 치뤄진 선거에서 대통령이 된 자타가 공인하는 정보통이다.

이런 그가 군사력으로 밀어 붙여 체첸 전쟁, 남오세티야 전쟁, 크림반도 병합에 이어 여세를 몰아 시리아 내전에 개입했다. 그에게 전쟁은“신(神)의 행군”이었다. 러시아의 막강한 군사력과 압도적 국민 지지가 푸틴정치를 지탱해 주었다. 대부분의 러시아 국민들은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거나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지 않았다. 그래서 기가 오른 그는 전쟁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그런 푸틴에게는 옛 소련의 영광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기본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국경선을 넓혀 모스크바의 영광을 되찾고 싶은 것이다. 러시아인들은 모스크바를“제3의 로마”라고 불렀다.“차르”라는 호칭도 로마 카이사르의 러시아식 표현이다. 이처럼 러시아는 세계로 통하는 로마를 꿈꾸어 왔다. 이런 정서에서 국경이라는 개념은 러시아식으로 해석되고 분할되고 책정되어야만 했다. 그러므로 푸틴에게 우크라 침공은 유라시아주의의 실천과정일 뿐이다. 우크라는 유라시아주의의 이름으로 러시아가 극복해야 할 현실적 대상이 된 것이다.

그러나, 푸틴의 전쟁기획이 잘못 됐다. 푸틴은 “특수군사작전”이라는 이름을 빌어 우크라를 점령하려 했지만 독일의 전격전과 같이 속전속결을 목표로 했음에도 최정예 전력을 보내지 않았다. 민병대 수준의 정규군을 투입한 것은 민족저항에 불굴의 신화를 써 온 카자크 전사들의 후예를 우습게 본 것이다. 점령지에서는 주민을 다독거리는 선무(宣撫)작전이 아니라 학살과 약탈이 자행됐다. 푸틴의 오판이다.

이로부터 저항선과 병참선이 길어졌다. 끈질기고 효과있는 저항은 전쟁의 소모전을 불가피하게 만든다. 국제사회의 제재 속에서 러시아는 장기전과 소모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전쟁의 장기화는 전투의 치열성과 전쟁의 명분을 빼앗는다.

둘째 측면은 “대중의 자각”이다.

우크라 전쟁에서 러시아군 전사자가 7만∼8만명으로 추산된다. 우크라군의 전사자는 하루 100명에 육박한다. 민간인들까지 포함하면 사상자 수는 더 늘어난다. 불필요했던 아까운 죽음이다. 그런데 푸틴은 예비군 동원령을 추가로 발동했다. 심지어 전투 거부와 전장 이탈을 막기 위해 독전대까지 배치했다. 죽음의 전선으로 나가라는 명령에 러시아인들은 징집을 피하는 필사의 탈출로 답했다. 이윽고 러시아 전역에서는“무덤으로 갈 수 없다”는 전투적 시위구호가 등장했다.

영토병합을 당한 지역주민들의 탈출행렬도 이어졌다. 떠나는 발길에는 머물렀던 곳의 향수에 대한 간절함이 묻어있을 터이다. 그 발길이 많아지고 길어질수록 그만큼 폭발 가능성을 안고 있을 사회적 긴장은 누적된다. 사회적 긴장의 누적과 팽배는 체제변동의 불가피성을 객관화시킬 것이다.

다행히 역사는 인간의 자유가 박탈당하고 억압받는 사회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자유를 억압하는 폭력적 권위주의정권에 저항하는 민중의 자각은 역사를 바꿔왔다. 러시아에서 억압받는 민중들의 존재는“혁명에의 초대장”이다. 기이하게도 우크라 전쟁은“혁명의 나라”러시아와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푸틴정치도 대중과 민심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민심이 떠나면 배는 좌초된다. 1905년, 빵을 요구하는 노동자 행진에 대포를 발사한 “피의 일요일”사건은 러시아 민중에게 차르와 자신들 사이에 존재한다고 믿었던 동화(童話)와 같은 환상에서 깨어나도록 했다. 그들의 머리는 하루 만에 중세에서 근대로 뛰쳐나왔다. 볼쉐비키혁명의 전주곡이었던 셈이다. 그래서인지 헤겔은“일단 관념의 세계에서 혁명이 이루어지고 난 뒤에는 현실도 더 이상 견디어 낼 수가 없다”고 민중의식의 변화를 예견하여 중시했던 것 같다.

그러나 푸틴은 이 부분을 간과했다. 그는 자신의 고객인 국민을 편의점 상품처럼 취급했다. 푸틴의 오판이다. 지금은 권력기반이 공고하지만 반전시위가 지속성, 확산성, 규모성을 띠게 되면 푸틴의 권위상실이 초래된다. 이어 권력디플레이션이 발생하고 권위의 상실과 권력디플레이션은 혁명의“필요조건”이 된다. 소수 러시아 정치인들의 푸틴 탄핵요구는 작은 목소리지만 혁명의 “충분조건”에 해당된다. 이렇게“혁명의 정치학”은 가르쳐왔다. 자유를 억압하는 권력에 저항하는 민중혁명의 가능성을 논증하겠다는 것이다.

민중이 그들의 대표에게 신뢰를 보낼 때 그들은 자유를 상실한다고 룻소는 말한다. 우크라 전쟁의 새로운 변곡점은 이런 명제(命題)를 입증할 기회가 될 수 있다. 전쟁이 길어지면 민심이 한계점에 이르고 임계철선이 끊어진다. 이런 상황의 기하학적 정점에 푸틴이 서있다. 강요된 침묵의 끝자락은 끝을 향한 시작의 처음이다.

백병훈 약력

건국대 비교정치학 박사

국가연구원 원장

프라임경제신문 사장

한국정치심리공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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