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혼인, 허황옥에 투영
우리나라는 단일민족이라고 하지만 사실 다민족이 ‘한민족’이라는 이름 아래에 뭉쳐진 민족이다. 이런 이유로 역사적 기록에는 다문화 혼인의 기록이 많이 존재한다. 고구려 2대 유리왕의 경우 한족 여성과 결혼한 사례가 나오면서 ‘황조가’라는 노래까지 오늘날 전해내려온다. 다문화 혼인을 가장 확실하게 기록한 내용 중 하나가 허황옥이다. 허황옥은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등장하는 인물로 금관국 수로왕과 혼인해 아들 10명을 뒀는데 2명에게 허씨 성을 주고 허씨 성이 뿌리내리게 됐다고 기록돼 있다. 수로왕이 베필을 얻지 못해서 근심 걱정이 많았는데 바다의 서남쪽에서 붉은 색 돛을 단 배가 붉은 기를 매달고 북쪽으로 향해 오기에 맞이하니 인도 야유타국 공주로 성은 허이고 이름은 황옥이며 나이는 열여섯이라면서 부왕이 꿈을 꿨는데 옥황상제가 가락국의 오아 수로라는 자가 하늘이 내려 보내서 왕위에 오르게 했기 때문에 공주를 보내라고 해서 오게 됐다고 설명했다.어디서 온 것인가
허황옥의 출신지에 대해서는 역사학계에서 다양한 학설이 존재한다. 인도에서 한반도까지 그 당시 과연 항해술로 올 수 있었겠냐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도인이 아니었을 가능성과, 허황옥의 권위를 위해 불교적으로 윤색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허황옥은 한반도 출신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가락국이라는 점을 조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가락국은 초기 백제나 초기 신라와는 다르게 해양 항해가 발달했다. 더욱이 가야의 철정 기술이 발달했다. 이런 이유로 해양을 통해 가야의 철제 제품이 다양하게 수출됐다는 점에서 가야국의 명성이 인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동남아를 중심으로 상당히 많이 퍼져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찍부터 해양 문화가 발달한 가락국 입장에서 멀리 바다 건너 베필을 맞이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바다 건너 나라들 입장에서 가락국은 철기가 많이 나는 부자나라로 인식됐을 것으로 추정된다.인도 출신이 되면서
삼국유사에는 인도 출신이라고 돼있지만 학계에서는 인도 출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 출신으로 언급되면서 오늘날 우리나라와 인도의 가교 역할을 허황옥이 하고 있다. 가락중앙종친회는 매년 야요디아를 방문해 제사를 지내고 있다. 그리고 아요디아 라자의 궁전에는 허황옥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인도에서도 한국과 인도 관계의 상징적 인물로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도 고위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허황옥 이야기를 꺼내기도 한다. 허황옥 이야기는 앞으로 인도와의 관계 설정에 또 다른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인도는 앞으로 경제적 성장을 이뤄내서 경제대국 2위로 우뚝 서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있는 수많은 다문화 가정이 각 나라의 친선대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2천년 전 허황옥이 투영된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