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에 이어 금융‧통신‧유통‧교육까지…안 끼는데 없는 공정위
직권조사에 모니터링까지, 관련 업계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물가관리’ 나선 공정위,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 가능할까
[파이낸셜리뷰=박영주 기자] 건설‧금융‧통신에 이어 유통과 교육 서비스까지. 이른바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보폭이 날로 넓어지고 있다.
한때 윤석열 정부 인수위원회 시절 ‘홀대’ 논란이 일기도 했던 공정위지만, 지금은 현 정부의 민생관련 경제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없어서는 안되는 커다란 축을 담당하고 있다.
‘민생’과 직결된 분야에 대해서는 불공정 행위를 중점적으로 감시하겠다며 ‘물가관리’에 총력을 기울이는 공정위의 바쁜 행보를 놓고 일각에서는 공정위의 독립성‧신뢰성 가치가 훼손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정위의 목적이 독과점 등을 통한 부당한 행위 규제, 나아가 시장경제의 건전성 확보가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사사건건 물가 관리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사실상 이명박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물가관리위원회’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노조에 이어 금융‧통신‧유통‧교육까지…안 끼는데 없는 공정위
직권조사에 모니터링까지, 관련 업계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공정위의 행보가 가시화 된 것은 올해 초에 있었던 화물연대 파업 때였다. 윤석열 정부 핵심과제인 노조 불법행위 근절 차원에서, 공정위는 민주노총 건설노조 등을 상대로 제재를 가했다.
이 과정에서 공정위는 민주노총 전국건설노조 부산지부가 한국노총 소속 노조원을 현장에서 배제하도록 건설사에 압력을 행사한 사실을 적발하고, 노조 지부를 사업자단체로 판단해 과징금 1억원을 부과했다. 공정위가 화물연대‧건설노조 등을 노동자 조합이 아닌 ‘사업자 단체’로 판단한 것을 놓고 부처간 충돌이 발생하는 일도 있었다.
금융‧통신시장에서도 공정위의 움직임은 거침없었다.
지난 2월 윤석열 대통령이 금융‧통신 분야의 과점을 해소하고 경쟁 촉진을 위한 대책 마련을 주문한데 이어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기득권 방어를 위해 경영한 부분이 없는지 성찰과 반성이 필요하다”고 날을 세우자, 공정위가 기다렸다는 듯 ‘담합조사’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대통령 지시 이후 보름 만인 2월27일 시장감시국이 SKT‧KT‧LGU+ 등을 상대로 현장조사를 진행했고, 같은날 카르텔조사국은 신한·KB국민·하나·우리·NH농협·기업은행 등 6곳에 대한 현장조사에 착수했다. 지난 20일에는 메리츠·KB·삼성·NH투자·키움증권 등 5개 증권사와 금융투자협회에 조사관을 보내 현장조사를 벌였다. 업계에서는 금감원보다 공정위가 더 무섭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흘러나왔다.
최근에는 라면값에도 정부가 목소리를 낸 뒤 공정위가 들여다보겠다고 엄포를 놓는 일이 벌어졌다. 추경호 부총리가 “기업들이 밀 가격이 내린 부분에 맞춰 적정하게 라면값을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한 이후 공정위가 국민 생활에 밀접한 주요 식품의 가격추이 등을 전반적으로 모니터링 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별도의 조사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공정위가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업들은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달에는 교육계가 공정위의 표적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른바 수능의 ‘킬러문항’을 문제 삼으며 “약자인 우리 아이들을 갖고 장난치는 것이다”, “부적절하고 불공정한 행태”라고 지적한 이후 공정위가 대형 학원들을 중심으로 부당광고 실태를 들여다보고 나선 것이다.
‘킬러문항 최고 적중률’, ‘의대 합격률’ 등의 광고행위가 거짓‧과장‧기만 광고에 해당하지 않는지 들여다보겠다는 것인데 해당 광고문구를 쓴 학원들은 사실 여부를 입증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과징금 철퇴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과거 공정위가 에듀윌 등 교육업체의 부당광고를 적발한 전례가 있는 만큼 이번 조사도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공정위의 경우, 기업간 담합 또는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갑질‧횡포 등 불공정 행위가 있을 경우 검찰에 고발할 수 있는 ‘전속고발권’을 무기로 갖고 있는 만큼 기업들은 공정위 눈치보기를 할 수 밖에 없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당연히 기업활동을 하는 입장에서 독과점을 했고 안했고를 떠나서 공정위가 들여다본다고 하면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지 않느냐”며 “밀값 때문에 라면이 표적이 됐으면 그 다음 타자는 제과제빵업계가 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많다”고 귀띔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요즘 워낙 정부에서 건바이건으로 제재를 하다보니 무슨 말을 하기도 조심스럽다”며 “불공정한 행위가 있다면 당연히 처벌받아야 하겠지만 특정 품목이 비싸다는 등의 이유만으로 기업들이 죄를 지은 것마냥 취급하다보니 조금 답답한 면이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대통령‧부총리가 쏘아올린 공, 공정위가 받아치기
‘물가관리’ 나선 공정위,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 가능할까
일련의 흐름을 살펴보면 윤석열 대통령 또는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민생문제를 언급하면서 특정 업계를 겨냥한 발언을 쏟아내면, 공정위가 기다렸다는 듯 발맞춰 직권조사 혹은 모니터링에 착수하는 형태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이를 놓고 사실상 ‘물가관리’ 역할까지 자처하고 있는 공정위의 행보가 과연 공정위 존재 목적에 부합하는지에 대해 논란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공정위가 담합 여부를 조사해서 철퇴를 내리는 것 이외에 특정 품목의 가격에 개입하며 지시를 내리게 된다면 불법에 해당한다.
“사업자의 시장지배적지위의 남용과 과도한 경제력의 집중을 방지하고, 부당한 공동행위 및 불공정거래행위를 규제해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창의적인 기업활동을 조성하고 소비자를 보호함과 아울러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
공정거래법 1조에 명시된 목적이다. 핵심은 독과점 행위와 불공정한 거래를 막음으로써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하는 것으로, 여기에 물가관리에 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공정위가 물가관리위원회로 전락한 것은 윤석열 정부 때만의 일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12년전인 2011년 1월 당시 이명박 정부에서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임명된 김동수 위원장 시절, 공정위는 ‘물가관리위원회’라 불렸다.
원래 ‘공정위는 시장경제를 감시하는 곳이지 물가당국이 아니다’라는 것이 공정위 기조였지만 “물가 관리에 신경써달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요청을 받고 임명된 김동수 위원장은 간부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공정위가 물가기관이란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직원은 사표를 쓰라”고 엄포를 놓았다.
이른바 MB물가 품목으로 불렸던 생필품 52개에 대한 모니터링이 이어진 끝에 라면‧김치‧캔커피 등 업체들의 담합이 적발돼 과징금 부과가 이뤄졌고, 프리미엄 전략을 내세운 ‘신라면블랙’이 미운털이 단단히 박혀 공정위 조사를 받기도 했다.
공정위에서 오래 일했던 이들 사이에서는 ‘공정위가 물가단속에 나서는 순간 시장경제 파수꾼이라는 정체성은 사라진다’는 말이 있다. 현재 윤석열 정부 공정위 모습은 12년전 물가관리위원회로서 활약(?)했던 공정위와 그다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이명박 정부 당시 공정위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물가 인상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시장에 뛰어들어가 앞장서서 모니터링을 이어가는 공정위의 바쁜 발걸음이 윤석열 대통령이 목 놓아 외친 ‘공정과 자유’를 핵심으로 한 경제 촉진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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