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11월 5일 경의선 개통
[역사속 오늘리뷰] 11월 5일 경의선 개통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4.11.05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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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05년 11월 5일은 한반도 대동맥 역할을 했던 경의선이 개통한 날이다. 러일전쟁 시기에 일제가 전쟁에 활용하기 위해 경부선과 함께 완공했다. 신고산 타령이 경의선과 관련된 민요이다. ‘신고산이 우르르 화물차 떠나는 소리에 구고산(舊大山) 큰 애기 반봇짐만 싸누나’가 바로 그것이다. 함경남도 안변군 고산면 일대에 기차역이 생기면서 ‘신고산’이라고 불렀고, 기존 동네를 ‘구고산’이라고 불렀다. 즉, 신고산에 기차역이 생기면서 구고산에 있던 남성이 돈 벌러 객지로 나가면서 부인이 반봇짐만 싼다는 내용이다. ‘반봇짐’은 왕복이 아닌 편도 봇짐이다. 즉, 돈 벌러 객지로 나갔다가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용산역 기점으로

초기에 개통될 때는 용산역을 기점으로 한다. 왜냐하면 용산역 일대에 일본군이 주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19년 경성(현 서울)이 확장이 되면서 경성 주민들이 용산까지 가기 불편해지면서 신촌역을 경유하면서 남대문역(현 서울역)까지 연장했다. 경의선은 그야말로 수탈의 철도였다. ‘원산’은 부산과 더불어 동해안에 존재하는 천혜의 항만 도시였다. 그 이유는 원산만이 있었기 때문에 언제든지 선박을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동해안의 높은 파도에도 불구하고 원산만은 파도가 언제나 잔잔했기 때문에 선박 정박이 가능했다. 이런 이유로 함경도를 중심으로 한 안정적인 수탈이 가능해졌다. 여기에 일제강점기 당시 흥남에 비료공장이 세워지면서 이른바 ‘흥남공업지대’가 형성됐고, 여기서 생산한 비료는 중일전쟁 당시 다이너마이트 등 폭약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태평양전쟁 당시에는 알루미늄을 생산에 일본에 보내게 됐다. 그때 경의선이 이용됐다.

해방 이후 분단되면서

해방 이후 한반도는 남북으로 분단됐지만 제한적으로 경의선 열차 운행이 가능했다. 하지만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초토화됐고, 이후에 복구되지 못하고 방치됐다. 그러면서 경의선 종착역은 문산역으로 단절됐다. 그러다가 통근열차로 개편되면서 고양 파주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유용한 통근 수단이 됐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한국과 북한이 경의선 선로 복구에 합의하면서 경의선이 복구되는 듯 보였지만 도라산역~개성역까지의 운행은 중단되는 일이 반복적으로 이뤄졌다. 그러다가 2018년 4월 27일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채택된 판문점 선언에 경의선과 동해선의 현대화가 명시됐다. 하지만 올해 7월 북한 측이 군사분계선 이북지역에 있는 경의선 철로와 침목을 제거했고, 10월 15일 연결구간중 60m에 달하는 선로를 폭파했다. 남북관계가 극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이상은 경의선 복구는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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