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11월 1일 올림픽 작전 실행될 뻔
[역사속 오늘리뷰] 11월 1일 올림픽 작전 실행될 뻔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4.11.01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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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버섯구름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버섯구름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45년 11월 1일은 올림픽 작전이 실행될 뻔한 날이었다. 일본제국주의가 8월 15일 무조건 항복을 하지 않았다면 올림픽 작전으로 인해 일본은 지도에서 사라질 뻔했었다. 당시 미국은 일본제국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몰락작전’을 구상했다. 그리고 올림픽 작전은 몰락작전의 일부분이었다. 그야말로 미국의 모든 병력을 쏟아 부어서 일본 본토에 상륙한다는 작전이었고, 일본은 결호작전으로 사수를 한다는 입장이었다.

대규모 병력 투입

올림픽 작전은 11월 1일 규슈 남부에 14개 사단 25만 육군과 9만명의 해병대, 항공모함 42척, 전함 24척, 구축함 400척, 수천대 상륙정, 2천기 항공기를 동원하는 작전이었다. 일단 대규모 연안 함포 사격을 시작으로 연합군 지상 주력본대의 대규모 상륙작전이었다. 올림픽 작전은 코로넷 작전에 동원될 공군기지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에 가고시마 만과 비행장 건설 등을 위해 일본 땅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11월 11일 상륙한 후 11월 4일까지 해안 교두보를 확보하고 11월 6일 가고시마만에 추가 상륙해서 큐슈를 점령한다는 계획이다. 최종적으로 12월 1일 종료할 예정이었지만 만약 일본군이 격렬하게 저항한다면 원자폭탄과 독가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상륙 시 전사자만 10만명 이상

연합군이 이처럼 대규모 상륙 계획을 세운 것은 이오지마 전투와 오키나와 전투 등에서 보여준 일본군 전술의 변화이다. 그 이전까지는 ‘반자이 돌격’을 하면서 연합군 입장에서 일본군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오지마 전투 이후 매복, 기습, 저격, 위장, 농성, 자폭 등을 하면서 연합군이 많은 손실을 입었다. 여기에 일본 본토 주민들도 미군을 죽여야 한다는 결호작전을 결행할 태세를 보이면서 미군 입장에서 본토 상륙을 한다면 전사자만 10만명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즉, 일본의 저항이 상당히 심하기 때문에 올림픽 잔전의 결행에 대해 연합군은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물론 또 다른 일각에서는 이미 도쿄 대공습 등으로 인해 일본은 더 이상 저항할 수 없는 상태가 됐기 때문에 상륙을 한다고 해도 연합군이 별다른 피해를 입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다. 다만 상륙을 하게 된다면 오히려 일본 주민들의 피해가 상당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이런 과정 속에서 8월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면서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하면서 11월 1일 올림픽 작전을 비롯한 몰락작전은 취소됐다.

만약 결행했다면

하지만 만약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하지 않았다면 올림픽 작전을 포함한 몰락작전이 결행됐을 것이다. 그로 인해 연합군 피해는 앞서 언급한대로 10만명 이상의 전사자가 나왔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일본은 지도에서 아예 사라졌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이유는 결호작전이라는 것이 결국 ‘1억 총옥쇄’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즉, 1억명의 일본 국민 모두 죽더라도 1명의 미군을 더 죽여야 한다는 것이 ‘1억 총옥쇄’이다. 따라서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하지 않았다면 일본 국민은 지도에서 아예 사라졌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문제는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하지 않았다면 한반도는 공산화가 됐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왜냐하면 당시 8월 소련이 참전을 했고, 빠르게 남하를 하면서 만주를 점령하고 한반도 이북을 점령했기 때문이다. 11월까지 일본이 항복을 하지 않고 버틴다면 소련군은 한반도 전역을 점령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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